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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미술 현장의 동향과 평가 / 미술 감상 안내   
혀끝의 스카치위스키와 캔버스 위의 붓질


학예기획팀   /   <스카치 위스키 바이블>, 강동은 편집, WALK Company, 2010   /   2012. 3. 24.



표면에 스미는 뚜렷한 경험

                     혀끝의 스카치위스키와 캔버스 위의 붓질

 

              박인환(1926~56)
   이희영, 미술평론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로 시작하는 박인환(1926~56)의 시에서 그 “잔”에 담긴 술의 종류는 무엇일까? 1956년 그가 죽었을 때 그의 동료가 싸늘하게 식은 그의 입에다 조니워커를 적셔주었다고 한다. 또 다른 동료는 하관하는 관 위에 조니워커를 마구 부었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그 술 두 병을 관에 넣었다고도 한다. 생전에 버버리 외투를 즐겨 입고 장 콕토(Jean Cocteau, 1889~1963)와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883~1956)을 흠모하는 등 그의 실천과 추구는 당시로서는 가당찮게 세련된 근대도시의 풍미였다. 따라서 그의 시 “목마와 숙녀” 첫 줄에 등장하는 술은 스카치위스키가 분명할 것이다.



                                           * * *

   미군에 의해 본격적으로 소개된 스카치위스키는 내전 국가의 시인과 독자들이 동경은 할 수 있지만 온전히 즐기기에는 벅찼다. 시인은 멀리 외부에 있는 세련된 이상을 감지하고 그것을 향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폐허의 현실에서 드물게 마주하는 위스키로 “숙녀”를 그리면서 근대의 풍취를 확인했을 것이다.

 
    성큼성큼 재바르게 걷는 이(Striding Man)

    조니워커의 상징

위스키는 분명 새로운 맛이고 먼 곳의 것을 바로 여기에서 직접 경험하게 했다. 그것은 허기를 채우기 위한 것도 제사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어떠한 현실의 용도와 상관없이 그것은 그저 음미하는 그 자체의 경험만을 위하는 것으로 비쳤다. 곡주와 소주가의 취기가 더딘 것에 비해 그것은 훨씬 빨랐고 취하기 전과 취한 뒤 그리고 깨어났을 때가 확연히 구별되고 깔끔했다.



   특히 조니워커의 외관은 파격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것의 병은 날렵하고 군더더기 없는 사각기둥 형태로 단순함을, 그리고 그 표면에 비스듬히 붙은 상표는 역동감을 드러낸다. 상표에 인쇄된 인물은 높은 모자에 지팡이를 들고 제 갈 길을 성큼성큼 나아가며 대수롭지 않게 전방의 애주가를 힐끗 쳐다본다. 여기서 인물의 냉정함이 두드러진다. 단순함과 역동감 그리고 냉정한 인격은 근대를 특징짓는 분명한 시각적 형식이다. 스카치위스키 제조사 대부분이 문장과 같은 상징적 이미지를 채용하는 것에 비해 조니워커는 “성큼성큼 재바르게 걷는 이(striding man)”를 구상적으로 재현했다. 조니워커는 현실의 구체적 이미지로 상표를 설계했다. 그것도 당대 도회의 신사가 일상에서 스치는 동작을 포착한 점에서 여타 제조사의 것을 중세 지향적 이미지로 비교되게 한다.



                                                                  * * *



 

        허선(何森), 소녀와 위스키(女孩与威士忌)

                          2008, 캔버스에 유채, 250x200
박인환을 만난다면 최근에 제작된 중국의 신진 화가 허선(何森)의 “소녀”연작을 보여 주고 싶다. 허선의 화면에는 허망하고 무기력한 나무토막에 실려 보내버린 숙녀의 옷자락 정도에 머물지 않고 숙녀의 속살과 입술 그리고 그녀의 은밀한 행동까지 까발려져 있기 때문이고 또한 조니워커가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내전 국가의 사람들이 그렇게 동경했던 근대적 삶의 막바지가 사정없이 노출된다. 그의 연작 중 최근에 제작된 “소녀와 위스키”(女孩与威士忌, 2008)에서 오늘날 극동의 도회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세련된 소녀가 등장한다. 그녀의 풍모는 그 곁의 조니워커가 있기에 어색하지 않다. 박인환이 그렇게도 추구하던 근대의 음료와 근대의 숙녀가 한 곳에 있는 셈이다.



   그림은 막 담배에 불을 붙인 소녀에게 갑자기 사진기를 들이대고 스트로보라이트를 터트릴 때 포착되는 밀실의 장면이다. 이 작품은 그 앞에서 그녀를 보는 전시장의 관람자가 바로 그 장면을 촬영한 당사자인 것으로 설정된다. 허선의 회화적 설계(pictorial design)는 현실에 실재하는 관람자와 미술작품의 내용간의 직접적 연결을 전략으로 채택했다. 그림에 등장하는 소녀의 피부와 의상 그리고 병 그 외 테이블과 벽 등의 대상은 반사, 투과, 흡수와 같은 빛에 대한 섬세한 변별로 재현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회화는 사진사실주의(사진의 결과물과 같은 정밀한 재현을 목적으로 하는 경향)의 신뢰에 도달한다.



 

         허선(何森), 소녀와 위스키”(女孩与威士忌), 2008, 캔버스에 유채

                          200x235

   이러한 정밀한 표현은 한편 전적으로 캔버스 표면을 스치는 붓질의 속도와 마찰에 의존한다. 소녀가 입은 옷의 얇은 섬유의 부드러운 결이나 그 표면의 꽃무늬 이미지는 바탕색이 마르기 전에 묘사된 것들이다. 그 과정에서 결정된 팔레트의 색은 이미 칠된 표면의 조건과 충돌하게 된다. 이 충돌은 고스란히 화가의 손짓을 기록한다. 그렇게 해서 남는 붓질이 두드러질수록 묘사하려는 대상의 암시는 멀어지고 대신 물감의 물리적 특성이 부각된다. 이는 마치 맑은 유리창에 붙은 먼지를 주목하면 먼지가 부각되고 그 너머의 풍경이 멀어지는 것과 같다.



   허선은 인물과 의상 그리고 기물과 같은 상식에 익숙한 대상들의 재현에서는 물감의 물리적 특성이 드러나는 것을 절제하고 반면 머리칼, 그림자, 담배연기와 같은 애매한 대상의 표현에서는 과감하게 붓자국과 손짓의 경로를 허용한다. 심지어 그의 담배연기는 사진사실주의의 믿음을 온전히 저버리고 그것에 상충되는 표현주의의식의 몸짓을 확연히 드러낸다. 소녀의 은밀한 행동을 판독하던 관람자가 그 표면에 칠된 물감의 결을 주목하면 보이는 것의 허상을 인정하고 표면에 만져지는 감각의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요염한 소녀가 한낱 물감의 칠에 불과한 사실을 깨닫는 것은 표면의 구체적 진실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회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관람자를 창출하고 관람자를 새롭게 한다.

                                                                 

                                                                     * * *

사실적 신뢰를 유지하면서 붓자국과 같은 물감의 자발적 특성을 드러내는 것은 서양화 수련에 기초적 문제이다. 이는 또한 서양화의 도입과 흡수를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취앤산스(全山石), 영웅은 결코 무릎을 굽히지 않는다(英勇不屈), 1961

                           캔버스에 유채      
특히 팔레트의 선택에만 의존하지 않고 표면에서 마찰하고 충돌하는 제작 공정과 그 자발적 질서를 드러내는 것은 현대미술사의 중요한 문제로 간주된다. 렘브란트가 그린 노파의 이마 주름을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화가의 손짓과 물감의 덩어리들이 얽힌 것을 보게 된다. 그러한 물리적 진실과 내리꽂는 한줄기 빛에 드러나는 주름진 이마의 환각 간의 공존을 가능케 하는 것을 크리미니스(creaminess)라 한다.



   중국의 현대미술에서 크리미니스는 의외로 최근에 도입되었다. 1960년 러시아의 레핀미술학교(Repin Academy of Fine Arts)에서 공부를 마친 취앤산스(全山石, 1930~)에 의해서이다. 그의 귀국으로 크리미니스를 몰랐던 그의 선배나 동료의 그림들은 서사적 삽화처럼 비쳤고 사회주의 이념을 설명하는 수단에 머물렀다. 하지만 취앤산스의 회화는 표면 너머의 혁명적 내용을 재현함과 동시에 그 표면의 물리적 사정도 남김으로써 훨씬 활기차고 생기가 돌았다. 고호 그린 해바라기가 관람자를 각성시키는 것은 표면 너머의 정밀한 해바라기의 환각 때문이기 보다 해바라기의 관념을 새롭게 하는 표면의 붓자국 때문인 이유를 당시 중국인들은 겨우 이해하기 시작했다.



 
 영웅은 결코 무릎을 굽히지 않는다(英勇不屈)의 부분

   허선은 분명 취앤산스의 표면을 계승하고 있다. 하지만 회화를 통해 관람자를 설정하는 전략과 냉정한 사진사실주의의 채택에서 취앤산스에 비해 그의 평면은 훨씬 견고해 보인다. 취앤산스의 그림에 액자를 적용하면 어울리지만 허선의 것에 액자는 좀체 적용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취앤산스의 회화공간이 대부분 19세기 말 유럽의 전통을 따르는 반면 허선의 것은 대부분 1945년 이후 미국미술의 전통을 따르기 때문이다. 취앤산의 캔버스 태두리 측면에는 못이나 스템플러 자국들이 선명해서 그것을 가리는 액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허선의 것은 그 테두리의 측면까지 회화의 영역으로 삼기에 화랑의 실재하는 벽면과 충돌하는 테두리의 경계 그 자체를 드러내려 한다.



   허선의 회화에서 손짓과 붓자국이 분명히 노출되는 담배연기와 소녀의 머릿결 그리고 그림자는 관람자의 촉각으로 감지되는 것들이다. 이것이 재현된 대상으로 읽혀지고 사진사실주의의 믿음과 공존하는 것은 표면의 크리미니스 때문이다. 그의 표면은 촉각과 시각을 통합한다. 탁자 위에 놓인 조니워커를 판독하는 관람자의 시각마저 표면은 관람자의 기억에 잠재한 스카치위스키의 향을 불러낸다. 취앤산스의 크리미니스가 표면을 물감의 물리적 특성으로 가득 채우고 재현하는 대상을 계층적으로 가공하려는 반면 허선은 표면의 긴장을 화면 전체에 균일하게 유지함으로써 가공 없는 직설에 도달한다.

                                                                        * * *





박인환은 자신의 시를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목마는 하늘에 있고…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라고 끝을 흐린다. 그는 근대를 성취한 오늘의 한국을 보지 못했다. 그의 죽음을 적신 조니워커의 근대적 특성은 지금도 변함없는 향과 맛을 지속한다. 상표의 유럽 신사는 지금도 다급한 걸음을 멈추지 않는 중이다. 서너 달 월급으로 겨우 구할까말까 했던 조니워커를 이제 나는 어설픈 글 한 편의 고료로도 충분히 살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조니워커의 증류소를 방문할 수도 있다. 그가 갈망한 근대가 이미 내 수중에 있다. 근대를 누리고 살면서 나는 박인환의 저 마지막 구절과 허선의 그림이 너무나 닮은 것에 놀란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木馬)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少女)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女流作家)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木馬)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靑春)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雜誌)의 표지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木馬)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박인환, “목마와 숙녀”, <박인환 시선집>, 산호장,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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