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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성을 지닌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조형 : 박동진의 그림들


아트네 편집취재팀   /   2010. 1. 20.

유연성을 지닌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조형

         박동진의 그림들


 
  화가 박동진

장준석, 미술평론가, 스페이스이논 관장




박동진의 그림은 마치 한 편의 서사시와 같은 이야기와 상상을 담고 있다. 또한 작가의 미적 감흥이나 추억까지 그대로 담겨져 있을 것만 같은 그림에는 여러 점들과 정형화된 직사각형 등이 말(馬)이나 나무와 함께 등장한다. 그의 그림은, 창작 의지나 방향과 관계없이 단순히 외적으로만 볼 때, 구조학적으로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형상들이 서로 긴장감을 조성한다. 무언가를 해체하고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는 듯한 느낌으로 이 세상 것과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세계로의 일탈을 꿈꾸는 것 같아 흥미로움을 더한다.

 

      COSMOS-봄날에, 2009, Mixed Media, 53x65

문장이나 글이 그 사람의 생각을 조곤조곤히 표현하듯이, 박동진의 그림 역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마음으로 느끼게 하며 쉬지 않고 어떤 상황을 생각하고 설정하도록 한다. 작가는 이러한 조형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새로운 세계를 맛본다. 더 나아가 무한한 시공간에 자신을 내던지며 가식 없는 절대적 세계로의 일탈을 꿈꾼다.


이처럼 그림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에 자신을 던지며 꾸밈없이 무언가를 보여준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말이나 글이 아닌 하나의 평면 속에서 단 한 번의 조형으로 자신을 나타내며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보여주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어려운 일인 것이다. 또한 감성으로 집약된 매우 섬세하고 민감한 이미지를 단 하나의 화면으로 거침없이 드러내는 특별한 과정도 쉽지 않은 일이다.


시대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타고난 감수성과 감성이라는 천재성이 있지 않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조형세계라 하겠다. 이처럼 작가의 그림에는 현대적 삶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표출된 감성으로 함께 느낄 수 있는 미묘한 감흥과 심미성이 있다. 이 감흥은 그만이 지닐 수 있는 순수미적 감흥으로서 매우 독특한 느낌을 주며, 일정 부분은 형상을 지닌 구체성을 지니면서도 무한한 상상력과 이지력 그리고 내면으로부터 변화된 많은 꿈같은 이미지들과 공존하고 있다.

 

        COSMOS-Glory, 2009, Mixed Media, 45.5x53

이처럼 환상적이고 꿈같은 이미지들을 위하여 작가는 사각의 캔버스를 하나의 거대한 우주로 여긴다. 끝없이 펼쳐지는 코스모스 속에서 무한한 존재의 알 수 없는 신비로움 속에 자신을 맡긴다. 사각 캔버스 안의 여기저기에 찍혀있는 많은 돋을새김의 점들은 끝없이 펼쳐지는 우주 공간 속을 유영하는 또 하나의 실체들이다. 이 공간은 미세한 미물들이 존재하는 또 하나의 소우주일 수도 있고 가공의 우주일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앞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작가의 그림에는 구조적으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미지들이 이지적이면서도 감성적으로 함께 어울리고 있다는 점이다. 딱딱하고 정형화된 사각형 혹은 대각선의 구조 속에서 어디론가 걷고 있는 듯한, 조금은 어눌해 보이는 하얀 말도 그러하고 아무 생각 없이 툭툭 찍어 놓은 듯한 수십 개의 투박한 점이나 꽃들도 그러하다.


그의 그림은 부조화의 구조적 표현들이지만 평온하면서도 감성적인 느낌을 주어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과 같은 여운을 던져준다. 특이한 공간감과 색다른 형태로 이루어진 말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COSMOS-긴 여름밤, 2009, mixed media, 90.9x65
이 말을 보면서 돈키호테가 타던 말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꿈속에서 보았던 신비스러운 말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한 샤갈의 초현실주의적 말을 연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혹은 과거 즐거웠던 꿈속의 한 순간을 연상하거나 공허한 우주 속의 천마(天馬)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박동진의 일련의 그림들은 엄청난 양의 이야기를 이지적이면서도 환상적으로 펼쳐놓은 것만큼 전달력이 강하며 무한한 상상력을 던져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일단 그의 그림에는 조형적 공간을 통해 자신을 또 다른 거대한 존재와 서로 소통시킬 수 있는 변증법적 에너지가 흐른다.


이처럼 단순해 보이면서도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말은 대단히 큰 의미로 다가오며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가 그린 말은 단순히 과거 화가들처럼 묘사 형식을 빌려 그린 말이 아니다. 내면으로부터 충만한 말에 대한 회화적 이미지는 여러 그림에서 나타나듯이 다양한 각도와 느낌을 담은 실험성 진한 말의 형상으로부터 비롯된다. 우리의 정서를 중시하면서도 여기서 비롯된 새로운 현대적 감성을 바탕으로 표현된 그의 일련의 말 들은 상징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기호학적인 측면에서도 관심을 끌만하다.


그러기에 그가 그린 말은, 말의 형태와 형식을 통해 이루어진 또 하나의 절대적 존재로 나아가는 표현의 수단이자 또 다른 세계와 연결되는 고리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들을 매개체로 하면서도 이를 통해 더 많은 시지각적인 상상과 가능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예술세계로 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는 것이다.

 
   COSMOS-우연한 조우, 2009, mixed media, 90.9x72.7

따라서 작가가 그린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다. 말 본연이 아닌, 현실에서 벗어난 상상과 자유함의 근원이라 하겠다. 현실을 벗어난 자유함 속에서 비롯된 말인 만큼 드러나는 형식도 자유자재다. 잘 그리려고 하지도 않고 남들의 뜨거운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본인 스스로에게 족하면 그만이다. 사실 말의 형체만 있을 뿐이다. 엄밀히 말하면, 진짜 말을 그리려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처음부터 말을 그리려는 의지가 없었던 것처럼 말의 밑그림의 흔적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박동진의 그림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현실과 나(我)가 아닌 현실 너머의 진실만이 있을 뿐이다.


이 진실을 그리고자 박동진은 기존의 표현 방법을 뛰어넘어 관조(觀照)적 자세로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작가가 표현하는 말이나 꽃, 혹은 나무 역시 이런 기조로부터 시작된 중요한 결과물들이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인공의 세계 혹은 자연의 세계나 현실의 세계와 이론적으로 대립되는 또 다른 세계를 부유(浮遊)해주는 초월의 세계로 가는 수단일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닌, 우주처럼 큰 또 다른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존재로서의 실체들인 것이다.


한 가지 환기해야 할 것은 박동진이 추구하는 이런 일련의 예술적인 현상들은 과거 동양에서 펼쳐보이던 심제좌망(心齊坐望)으로 시작되는 관조(觀照)나 사의(寫意)적인 세계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어떤 대상이나 실체에 대해 특별한 이지적인 체험을 하고 이를 자신의 예술 작업에 흡수시키는 경우라 하겠다. 그는 이러한 특별함을 현실로부터 스스로의 성찰을 통해 일어난 초월적 체험에 하나의 시점을 부여하고 영혼의 격정이나 의식의 충격이나 꿈의 몽환에도 유연하게 대응하는 조형적인 결투를 벌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박동진의 개인전, 갤러리고도, 서울, 2010. 1.

따라서 작가는 현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모던한 문명의 이기로부터 비롯된 각박함과 비인간화 된 삶의 현장, 대도시의 파편화되어 가는 상황 등을 인식하지 못한 대중들과는 달리, 그 모순적인 것들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고 하겠다. 자신의 손에 들려진 현대로부터 튕겨져 나온 파편 조각을 놀라움으로 응시하며 우수에 잠긴 알레고리(allegory)의 예술가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는 모더니즘 시대를 살면서도 모더니즘을 일탈하는 특별함을 지닌 유연한 예술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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