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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미술 현장의 동향과 평가 / 미술 감상 안내   
서용선의 회화적 전략


학예기획실   /   2006. 10. 9.
 

천연덕스러운 희생의 서사

                          
서용선의 회화적 전략







이희영, 미술평론가



       "미래의 기억"서용선 개인전, 2004. 6. 11.~7. 18.

        일민미술관, 서울, 김용임 촬영
서용선의 작품들은 미술가가 맞닥뜨린 장소와 역사적 정보에 관한 회화적 기록들로 채워진다. 일상에서든 여행지에서든 서용선은 자신을 자극하는 감정의 근원을 과거와 관련되는 통찰과 사회적 인식으로 표현해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에 걸리는(2006. 11. 갤러리고도, 서울) 회화들 역시 그와 동일한 일관성과 함께 2004년 여름 서울과 올해 가을 뉴욕에서 개최된 그의 개인전들을 통해 드러나기 시작한 몇몇 변화를 포함한다. 이 변화는 캔버스의 바탕과 동일한 흰색이나 여백이 이전보다 풍부하고 따라서 다소 느슨한 칠이 두드러져 보이는 외관에 많이 발견된다.

     

  나는 그 여름 그의 그림들이 진열된 공간에서 일말의 인본주의적 갈증을 느꼈다. 그의 캔버스들은 어두운 칠이 된 벽면에 걸린 채 좁은 면적으로 조명되는 빛을 받았다. 이러한 진열 방식이 밝음과 어두움의 구별을 통해 회화의 영역을 부각하려는 의도겠지만 그것은 대중을 위한 막연한 배려일 뿐 관람자의 창출이 포기된 발상이라고 생각되었다.

   "New Works" 서용선개인전, 2006. 9. 1.~10. 7.

    크레클루아트갤러리, 뉴욕
더욱이 거기에는 최근의 변화를 포함하여 액자가 없거나 화면의 가장자리에 대한 관심과 같은 서용선 회화의 시각적 사정들(visual episode)이 간단하게 무시되었다. 이때 화랑 공간을 서성이는 사람은 미술가의 시각적 통찰과 자신의 경험을 충돌할 비평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 사람은 자신이 땅을 디뎌선 화랑공간의 현실과 상관없이 붕 떠 있는 훌륭한 반사물을 찬탄하든 아니면 지나치는 조건에 놓이게 된다. 그는 곧 몰입하든 방관하든 둘 중 하나의 태도를 갖는다.



* * *



1.

     시오스 출토의 소녀상(Kore from Chios)

      BC 6세기

이차대전 이전 유럽에서 검게 칠한 벽면이나 짙은 색 막 위에 회화를 건 예가 많다. 이는 회화의 사정을 캔버스의 가장자리 안쪽 표면 내부의 영역으로 한정하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조건은 불 끄진 상영관에서 은막 표면에 투사된 영화를 볼 때와 흡사한 관람의 조건을 조장한다. 이때 은막 표면의 물리적 진실은 사라지고 움직이는 그림 영역의 세계가 푹신한 객석의 실재하는 촉감을 잊게 한다. 이미지로 재료의 진실을 가리는 이와 같은 기만은 돌에 (부드러운) 표정을 새겨 돌의 (딱딱한) 물리적 진실을 잊게 한 BC 6세기 경 도리아인들의 고안물에서 유래한다. 이 기만은 지금껏 지속되는 시각적 믿음이자 세계를 파악하는 든든한 방식이 되고 있다.





서용선, 입체를 위한 습작, 2006, 포장위에 아크릴릭

49x64.5

현제 제작되는 서용선의 회화들은 재료의  사실들이 이미지 에 의해 가려지지 않고 고스란히 노출된다. 손길의 경로를 남기는 칠, 팽팽히 당겨진 천의 긴장, 오돌토돌한 종이의 조직 그리고 간간히 덧댄 이물질의 생경한 촉감과 같은 바탕의 물리적 사실이 그대 드러난다. 이미지의 연상적 암시와 재료의 실재감이 공존하는 셈이다. 이들이 함께 하는 화면을 어두운 벽면에 두고 한정된 조명을 쬐면 그 표면의 사정은 대부분 이미지의 연상적 조건으로만 판독된다. 그럴 때 화랑공간을 구성하는 기획의 의도나 시류의 힘은 원하는 대로 손쉽게 작품의 사실들을 조작할 수 있게 된다. 서용선의 회화는 이들 두 전시를 통해 표면의 물리적 사실에 관한 판독과 새로운 관람자의 창출을 제한 받았다.



 서용선, 분할점령, 2006, 건천에 아크릴릭, 222x387

서용선의 회화는 균일한 색면이 캔버스의 테두리에까지 지속되거나 심지어 캔버스 측면의 두께에까지  칠되는 것들이 많다.  그뿐만 아니라 좁은 철조망을 재현하거나 수평선을 나타내는 선 역시 테두리를 의식하는 모습으로 한쪽 가장자리에서 시작해서 다른 쪽 가장자리까지 이어진다. 캔버스나 종이 바탕의 전체 모양새에 대한 이러한 인정은 바로 곁에 인접해 있고 실재하는 공간으로 이해되는 벽과의 관계를 회화의 조건에 포함하는 것이 된다. 그 벽은 회화의 영역임과 동시에 관람자가 인지하는 물리적 영역이다. 따라서 그의 회화는 그 표면에 얼렁거리는 관람자의 그림자가 실재하는 현실의 것으로 봐야할지 아니면 실재하지 않는 환각의 영역으로 봐야할지 하는 것까지 문제 삼는다. 서용선의 회화는 보는 이와 공유하는 밝은 빛 아래 조명될 때 제대로 드러난다. 그의 회화는 조명되기 위한 조건을 매체로 삼고 있지 좁은 면적의 개별 조명이 그의 매체이지는 않다.



2.

        서용선, 두 사람, 2006, 캔버스에 아크릴릭,

          57x52

서용선의 화면에서 사건과 이야기를 재현하는 어떠한 부분에서든 미술가의 몸짓을 기록하는 명확한 재료의 물리적 속성이 그러한 구상적 이미지와 함께 한다. 두툼한 윤곽으로 인물과 배경을 분할하거나 관련짓는 한편 반복하는 짧은 선들로 이목구비의 세세한 내용을 암시하는 납작붓의 자국은 두께가 그렇게 설계된 기능적 이유를 밝히는 듯한 모습을 한다. 배경을 밋밋한 평면으로 채운 바탕칠에 남은 손놀림의 흔적과 최소한의 얼룩은 용재가 안료에 섞이는 과정을 친절히 설명하는 듯하다. 표면의 사정에 관한 세세한 정보에 비해 재현된 장면이나 이야기의 사정은 너무나 단순해서 태만해 보이기까지 한다.



미술가의 몸짓과 바탕의 저항이 그대로 드러나는 칠과 가공되지 않은 원색에 의존한 형상의 이미지는 표현주의류(類)의 회화들과 연관될 법하다. 서용선은

         하늘II, 1982, 캔버스에 유채, 130x130
1980년대 10년간 자신의 활동을 요약하는 한 대담에서 신표현주의나 뉴페인팅을 통해 “현실에 보이는 형태를 기록하는 소묘방식”과 “상상력의 적극적 활용”을 통해 1970년대 후반 추상미술과 같은 “패쇄적 자기 아집”을 멀리하고자 그것들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고 말한다. 이 언급은 그것들과 그의 물리적 특성을 짙게 연관 짓게 하는 한편 그것과의 차이를 암시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대담에서 그가 지시하는 관심이 그의 회화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 단색조의 소나무 연작이 ’8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 파열하는 붓 자국과 원색이 적용되는 것으로 바뀌는 지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때 나무의 줄기와 땅은 붉은 색으로, 하늘은 짙은 파란 색으로 그리고 군데군데 검정의 그림자들로 그의 화면은 곧 엄청난 사건이 벌어질 것이거나 그것이 막 지나간 풍경을 연상하게 한다. 이들 몇 가지 색은 추후 이어지는 서용선의 다른 역작들의 삽화들에 등장하는 주된 색으로 자

           서용선, 소나무숲, 1984, 85, 캔버스에 유채
리하게 된다. 미술가에 의하면 애초 소나무 연작은 단색조 회화와 같은 추상미술의 한계를 의식한 형상의 사실적 재현과 “그것을 둘러싸고 관통하는 공간과 화면”의 “구조”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소나무 연작은 대체로 대상의 충실한 재현과 바탕의 한계라는 상반된 충돌의 공존을 문제 삼는다. 초기작에서 재료의 노출이 전혀 없는 소나무의 재현과 바탕의 흰색은 붓질 없이 문지른 애매한 변화들로 중재되어 있다. 이처럼 서용선은 그가 전문 미술가로 소개된 초기 그의 연작에서부터 상반된 요소들 간의

임진년, 1989, 캔버스에 유채

차이와 관련을 자신의 회화적 전략으로 삼기 시작한 듯하다.

     

재현된 이미지와 그 바탕간의 관계를 중재하는 애매함은 점차 원색의 적용을 통해 조짐과 징조의 연상을 자극하는 간헐적 붓 자국으로 대체되고 이들 간의 관련은 1980년대 중반 이후에 제작되는 역사화 연작에서 본격적 충돌을 드러낸다. 특히 형상과 형상이 겹쳐지는 표현에서 이것은 두드러진다. 어느 정도 섬세하고 충분히 재현된 삽화의 표면 위에 다른 대상의 모습을 재현하는 소묘가 태무심하게 겹쳐진다. 이 충돌은 울림, 사라짐, 곧 나타날 조짐, 혹은 곧 벌어질 사건의 연속에 대한 징조와 같은 비가시적 연상이 시각적으로 읽혀지는 것을 가능케 한다.

   

       서용선, 도시, 사람들, 1992

       캔버스에 아크릴릭

서로 다른 삽화들 간의 충돌과 중첩은 소묘에서 뿐만 아니라 원색의 단순한 적용 에서는 더 강조되거나 심지어 반전을 보이기까지 한다. 인물들의 몸 대부분이 붉은 색으로 칠되거나 이목구비와 같은 세부의 암시에서 대상에 대한 감각의 냉정한 기록을 주창한 인상주의자들이 채택하는 푸른색과 반대되는 붉은 색을 적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의 회화는 마치 고대의 도리아인들이 고안한 이래 전개되어온 환각의 발전적 맥락을 역행하는 방향을 향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상반된 요소의 태무심한 충돌이 비가시적 변화인 시간의 묘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 역행은 과거로의 소급을 가능케 한다. 이로서 서용선은 회화의 물리적 진실을 유지함과 동시에 이야기와 같은 연상과 시간의 서술을 가시화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

서용선은 도리아인에 의해 고안된 시각적 기만의 방법뿐만 아니라, 붓 자국과 표면의 조직을 완전히 가리는 르네상스의 환각적 방법을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그 환각의 기술로 소나무의 이미지를 정밀하게 재현해 보였음에도 그 방법을 같은 연작의 다른 개별 작품에서는 희생했다. 한편 그는 회화의 물리적 진실과 이미지의 서술을 동시에 획득해 내는 표현주의류의 회화 공간을 충분히 이해하고 이후의 연작들에 적용했음에도 분출하는 1인칭 시점의 자아를 희생함으로써 신표현주의나 뉴페인팅에서 차이를 갖는 지점으로 나아갔다. 나는 바로 이 희생이 다양한 주제와 외관의 변화들 속에 서용선 회화들을 관류하는 일관된 특성으로 본다.



       서용선, 266, Voice

        Acrylic on hemp cloth
서용선의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은 마음을 드러내는 표현의 표정이 없다. 그의 그림들에서 숨 막히는 채증과 빌딩 숲을 등진 도시의 군상은 어느 누구도 지루해 하거나 지쳐 있지 않다. 일제 순사에게 체포되는 무명의 애국지사의 얼굴과 몸짓은 민족애를 자극할 어떠한 암시도 없다. 독가스로 죽음이 예정된 포로들에게는 삶을 향한 갈망이나 공포가 없다. 분출하는 마음의 열정이나 처절한 고립을 여과 없이 배설하는 표현주의 식의 독자적 외침과 암시가 그의 화면 어느 곳에도 없다. 하지만 그의 회화 앞을 정면에 서서 가만히 그 사정을 응시하며 자신의 의식과 진지하게 충돌하는 관람자는 과거와 먼 곳 혹은 이웃 하는 곳의 사건을 인지하고 두 발을 디뎌선 자신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각성은 미술가가 회화를 출품하기 전에 그의 작업실에서 이미 가졌던 태도와 동일하다. 서용선의 매체가 창출하는 화랑공간은 바로 그와 같은 비평의 조건에 관한 것이다.

    

성모 목상, 11세기, 디종의 성모성당

현실에 경험 가능한 대상의 분명히 암시는 서용선의 동시대 민중미술가들의 형상과 공통된 특성을 갖고 있고 그것이 사회와 현실 그리고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점에서 유사해 보인다. 뭣보다 삶과 연관된 주제의 객관적 재현을 표현주의적 회화적 호소에 의존한 점에서 거의 같은 것으로 비칠 법하다. 하지만 삶과 현실 그리고 역사에 대한 서용선 회화의 시점은 표정의 제거에서처럼 타인의 마음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 올 어떠한 동정이나 선동을 죄다 희생하고 있다. 여기서 서용선의 매체는 민중미술의 3인칭적인 회화공간과 구별되고 심지어 비인칭적 시점에 더 접근되어 보인다. 비인칭적 시점은 도리아인들이 개발한 환각의 영향을 받지 않은 지역이나 그 이전의 제작물에서 곧잘 목격된다. 또한 중세 유럽에서 생산된 이미지들 대부분이 비인칭적이다. 이는 곧 상징이다. 마을 어귀에 선 장승은 그것이 장군으로 판독되는 이미지가 나무라는 물리적 진실을 능가하지 않고 그 앞에서 기원하는 사람의 마음에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된다.



서용선의 회화에 불쑥불쑥 등장하는 신체의 단절이나 홀연한 가면의 출현은 상형문자의 판독에서처럼 관람자의 마음에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될 것을 기다린다. 1996년에 제작된 “청령포-절망”에서 시퍼런 물 위에 불쑥 돋은 붉은 손은 파란색 배경과 연관될 친절한 암시가 전혀 없다.

      서용선, 청령포-절망, 1996, 캔버스에

        아크릴릭, 116x90.5
단지 그것은 가파른 초록의 얼룩진 색면, 파란색의 칠, 그리고 거센 물결 사이로 점점이 보이는 붉은 붓 자국들, 이들과 함께 관람자의 마음에서 연관되는 개념이기를 기다린다. 이러한 불친절한 태무심은 상징을 향한 시점에서 시각적으로 정당화 된다.

   

비참한 현장이 있으되 공포가 희생되고 비극이 있으되 슬픔이 희생되고 폭력이 그려졌으되 고통이 희생된 서용선의 서술은 천연덕스럽다. 심지어 이러한 천연덕스러움은 최근에 제작된 신화적 주제의 그림들과 이 번 갤러리고도에 걸리는 것들에서는 유머레스크마저 감지된다. 이 점은 단순한 모습으로 신성을 통합해 낸 중세의 목상에 발견되는 단순한 유머와 유사해보이기까지 한다. 고통과 절망의 무대에서 천연덕스러울 수 있는 것은 피에로 정도이다. 피에로는 자신의 성격에서 영웅을 희생하고 1인칭의 선언을 기꺼이 희생한다. 그러한 희생을 통해 그가 얻고자 끊임없이 갈망하는 하는 것은 자유이다.

* * *



      서용선, 김재봉 버전(virsion), 2006, 캔버스에 아크릴릭, 40.5x51

       모나쉬대학교 방문 프로그램 참여 중 미술가의 작업실
 

서용선은 단종을 주제로 한 역사화들의 제작이  정사에 대한 자신의 도덕적 회의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도덕적 회의는 인류가 환경에 대항해 삶을 꾸리고 세대와 세대를 존속시킨 이야기를 한꺼번에 요약할 서용선의 방법이다. 회의는 인간이 여타의 존재와 구별되는 당연한 일반적 속성에 대한 비평이다. 나의 갈증은 바로 이러한 비평의 자유가 방해 받거나 서용선의 회화적 고백이 어두움을 강조하는 좁은 조명에 의해 조작될 것이란 염려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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