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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미술 현장의 동향과 평가 / 미술 감상 안내   
전래식 조형산수의 전개


학예기획실   /   2007. 4. 20.

 

 

그려지는 것이 아닌, 탄생하는 매체로서의 회화

                                                         전래식 조형산수의 전개








이희영 / 미술평론가, 인천대학교 겸임교수


미술가가 새로운 양식을 창출하거나 형식적 도약을 실천할 때 그는 자신의 동료나 후배들과 단절되는 고립을 갖는다. 심지어 그는 그 이웃들이 품을 실망과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전래식은 미술가로서의 전문적 훈련 이래로 크게 두 차례의 비약을 실천했다.

          산, 2006, 천 배접에 먹과아크릴릭, 52x58
그의 이력에는 전통적 사실에서 추상으로, 그리고 추상에서 다시 구상으로 나아가는 양식의 층이 세 가지로 뚜렷이 구별된다. 하지만 그의 이웃들 대부분은 그의 새로운 형식의 외관이 소개될 때마다 처음에 가졌던 생경함을 이내 잊어버리고 그의 연속된 회화적 특징에 설득되어 왔다.

요란스런 새로움을 내세우지 않고도 항상 새로울 수 있고 또한 새로우면서도 항상 동일한 특성을 유지하는 전래식 회화의 전개에서 나는 그 특유의 일관성에 주목한다. 이는 최근 다양하고도 급격한 매체의 변혁 속에 시각 매체가 회화의 본질적 역할로부터 여전히 풍부한 암시와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고 나아가 시각 예술의 미래를 개척할 분명한 단서가 회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 * *

비약


1965년 국전을 통해 전래식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 그의 매체는 수묵화의 사실주의적 전통을 따르고 있었다. 전래식의 수업기를 포함하는 그의 초기 회화는 4대가 혹은 6대가로 불리던 1세대의 근대 산수화가들의 지침에서 출발하고 있고 또한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신을 연마했다. 이 훈련은 “인물, 화조, 풍경 및 산수”를 포함하는 “전통적 기법을 바탕”으로 한 “관념과 실경”의 “모든 영역을 섭력하는” 시기에 속한다.
1) 국전을 통한 등단 이후 거의 10년이 지난 1970년대 중후반 그는 새로운 양식의 회화를 시도했다.
  여정(餘情), 1982, 화전지에 먹과 채색
 1) 김남수, “이미지 추상으로 한국
     의 얼 표출: 산고의 아픔을 이기
    는 작가”, 「전래식: 한국화비구
    상」, 문예진흥원, 1987.
 


2) 정충락, “살아나는 산수의 정기”, 「전래식 11회 개인전 도록」, 공평아트센터, 1999.
한편 심항섭은 “’70년대까지만 해도 실경산수에 심취해온 그였기에 추상적인 평면에 의한 이  미지 구성방식으로서의 전환은 놀라운 변신으로 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까지 회고한다.
심항섭, “신조형산수화”, 「전래식 11회 개인전 도록」

3) 김복영, “사각의 기호에서 ‘신조
    형’의 산으로”, 「전래식 제 4회 개
    인전 도록」, 최갤러리, 1991.


그 결과 1982년 최초의 민전으로 전환된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추상에 접근한 “여정(餘情)”으로 대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를 통해 그는 전통적 산수화의 시각에서는 전혀 감지되지 않는 생소한 평면을 선보였다. 이는 그의 존재들을 세상에 알리는 기회였지만 한편 그의 이웃들에게는 섬세한 사실주의를 외면한 것으로 일견 받아드려졌고 “반란”으로 비쳐졌다.2) 이 때 그는 “불혹”을 넘고 있었다. 이러한 추상적 실험은 1984년의 제 1회 개인전(롯데미술관)에서 “여정”연작으로, 그리고 1987년의 제 2회 개인전(문예진흥원 미술회관)과 제 3회 개인전(예가화랑)에서 “적(跡)”연작으로 각각 모아졌다.

     산, 1993, 화선지에 먹과 아크릴릭, 9.5x78.5
     중학교 3학년 미술교과서 수록, 1997, 교학사
 

1987년의 개인전이 끝나자마자 전래식은 다음 해에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이 실험은 애초의 추상적 실험의 토대가 된 “화면을 크게 수정”하여 “산골짜기, 실개천, 폭포, 구름”과 같은 형상을 화면에 뚜렷이 암시함으로써 그의 이웃에게 “혈맥을 끊는 듯한 커다란 변모”로 비쳐졌다.3) 이 시도는 1991년 제 4회 개인전(최갤러리)에서 “산(山)”연작으로 소개되었다. 이전의 “여정”연작이 사각형 패턴의 반복과 “집합적 화면”의 추상으로 현실의 경험 가능한 연상을 대부분 차단한 것으로 보인 반면 “산”연작은 현실에서 목격되는 자연의 형태를 충분히 연상시켰다. 전래식은 이 “산”연작을 전통적 소재인 산수를 현대적 의미로 새롭게 변형시킨 개념으로서 “조형산수”라고 칭 한다. 전래식의 화력 40 여년의 전개는 이처럼 20년을 주기로 두 차례 생소한 변화에 직면한 이웃을 창출한 것과 미술가 스스로의 고립이 두 번 있었음이 밝혀진다.

       적(跡), 1986, 화선지에 먹과 채색, 94x90.7



극복


전래식의 고립은 매체를 마주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조건에서 생겨난 듯하다. 미술가가 자신의 화면에 돌진하면서 재료를 그것에 적용할 때 그의 삶과 이웃들은 그의 등 뒤 편에 놓이게 된다. 이를 때 그는 평면을 향한 분투를 할 충분한 여건을 획득하게 된다. 두 차례의 비약은 이러한 단절을 통해 가능했을 것이다. 여기서 전래식의 투지가 적용되는 대상은 회화의 본질적이고 물리적인 실체인 평면이다. 그것이 화선지이건 비단이건 스스로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미술가는 그 대상에 자신의 몸짓을 남기거나 그것을 넘어서려 한다.

“적”연작과 같은 초기의 추상적 수묵을 제작할 때 전래식은 화면에 구겨진 종이와 스폰지로 먹을 묻혀 찍거나 아교의 반발을 이용한 덧칠을 가했다. 그 결과 화면은 미술가가 선택한 재료의 물리적 생기와 화면을 향한 그의 분투를 고스란히 기록하게 된다. 제작의 공정을 떳떳하게 고백하는 전래식의 새로운 화면은 전통적 수묵화의 태무심한 관조와 구별된다. 전래식에 의하면 “여정”연작의 탄생이 “전통산수화의 진부함”이나 그 “관련성을 털어 보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4) 여기서 전래식이 “털어”버리려 한 진부함이란 바로 미술가의 몸짓을 가리고 생기 잃은 결과물로만 존재하려는 전통적 화면인 것이다.

      산, 2006, 천 배접에 먹과 아크릴릭, 66.5x81.5


1980년대 중후반부터 제작되어 온 “조형산수” 즉, “산”연작에서 산의 형태는 여백이나 발묵과 같은 안료의 전통적 고착방식이 간간이 있지만 바탕에 스며들 징조가 전혀 없는 아크릴릭이 대부분 적용되어 있다. 전래식의 아크릴릭은 전통적 채색화에서 목격되는 불투과성 안료의 반복된 고착과는 사뭇 다르고 미술가의 그침 없는 손짓을 그대로 기록을 하고 있다. 심지어 색이 파렛트가 아닌 화면에서 직접 섞이면서 결정되고 정제되지 않은 거친 두께의 칠이 앞 시기보다 훨씬 더 두드러진다. 이 화면에서 칠이 강조된 두께와 휘갈기는 손짓의 의지는 마치 물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마냥 물리적 조건에 역행하는 생명력의 원리를 웅변하고 있다.



허용

초기 추상의 시도 중 화폭의 뒷면에 칠을 적용해 전면에 그것이 스며나게 하는 것은 “여정”연작에서 시작되어 “적”연작에서는 뚜렷한 표현방식이 되고 있다. 이는 전통적 발묵(潑墨)에 대한 전래식의 반응이다.

    산, 1997, 천 배접에 먹과 아크릴릭, 116.5x107.5
제작의 과정에서 목격되는 생기에 주목한 화가가 대상을 재현할 수단이 아닌 그 자체 독자적 매체가 되게 하는 실험에서 이 방법이 채택된 것 같다. 그렇게 함으로써 스며듦이 회화의 중요한 요소임을 환기시킨다.

4) 전래식, “작가노트”, 「전래
    식 14회 개인전: 청작화랑
    이전기념초대전」, 청작화
    랑, 2003


5) 김인환, “사각의 해맑은 소
    리들…”, 「전래식: 한국화비
   구상」, 문예진흥원미술회
   관, 1987


6)
 최병식, “정화된 필묵의 흔
   적”, 「전래식: 한국화비구
  상」

이는 또한 평면을 능가하거나 그것에 뚜렷하게 대응하려는 미술가의 의지이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에 두께로 남는 칠과 달리 인위적이지 않다.

최근의 “산”연작에서 스며듦은 평면의 물리적 한계를 넘나들지 않고 표면에 번지는 얼룩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게 함으로써 휘갈긴 아크릴릭의 칠과 바탕이 그대로 드러난 종이 사이를 중제하고 있다. 이를 통해 관람자는 완성된 풍경의 재현에 머무른 전통적 관조의 공간을 생기의 공간으로 새롭게 변형해내는 전래식의 시도에 설득된다. 다소 급격해 보이는 비약이 얼핏 놀라워 보이지만 곧 전래식의 회화가 지닌 연속성을 자연스럽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여정(餘情), 화선지에 먹과 채색, 60.5x69.5, 미술가 소장
김인환은 전래식이 발묵 그 자체의 요소를 독자적 방식으로 따로 떼어 내어 적용하는 것에서 “잔잔한 실내악의 현악기의 음조”와 같은 “해맑은 소리”에 비견되는 조형언어라고 그의 비약을 받아드린다.
5)

언뜻 상하좌우가 쉽사리 분별되지 않을 정도로 추상에 거의 기울어진 “여정”연작은 얼룩과 발묵, 그리고 표면의 조직(texture)에 의해서 돌담이나 바위와 같은 환각을 야기할 법하다. 최병식은 이를 스폰지나 구겨진 종이를 두들겨서 세긴 “탁법(拓法)으로부터 표출되는” 화선지의 “독특한 감각과 농담(濃淡)의 변화에 의한” 것으로 지적한다.6) 이는 표면에 대한 전래직의 집중된 관심을 부각하는 언급이다. 

           산, 2005, 캔버스에 혼합재료, 124x163
표면은 평면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인지할 때 목격된다. 평면(plane)은 관조와 환각을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표면(surface)은 그 평면의 사정과 속성(flatness)을 조명해낼 실증적 사실이다.

표면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급기야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연작에서 칠하지 않는 바탕을 고스란히 남기는 시도를 하게 한다. 바탕이 천이든 종이이든 그것의 올이 당당히 스스로 물리적 진실을 주장한다. 초기의 표면이 미술가에 의해 가공되어 나타나는 것이라면 이후의 것은 그 사정의 노출이 허용됨으로 드러난다. 물리적 진실의 노출과 허용은 그 이웃한 스며듦의 얼룩이나 칠된 색들과 이내 충돌하게 된다. 이 때 관람자는 그 충돌을 자신의 마음으로 수습하게 된다. 그 과정에 시각적 자극은 음향으로 전환된다. 따라서 초기의 연작들에서 칠, 발묵, 스며듦, 여백, 이들 사이에 발생하는 충돌의 정도가 부드럽고 다소 약해서 김인환이 말한 대로 “잔잔한” 것이라면 최근의 연작은 서로 굵게 충돌하며 다투어 돋아나는 강렬한 메아리라 하겠다.



희생

대개 흰 바탕에 한 점 물감을 찍으면 물감이 새겨진 부분은 부각되고 그 바탕은 물러간다. 하지만 전래식의 평면에는 종이 혹은 천의 속성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바탕이 배경이 아닌, 오히려 형상으로 부각되는 부분이 상당히 있다. 바탕이 지닌 물질적 속성이 어느 듯 관람자가 연상하는 대상으로 읽혀진다. 특히 후기의 회화로 올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 심해진다. 그것이 때로는 강으로 때로는 산으로 판독된다. 미술가의 손이 미치지 않는 여백이 형상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이는 곧 (바탕이라는) 물질과 (강으로 판독하는) 마음이 하나가 되는 지점이다.

웅비의 산, 2006, 천 배접에 먹과 아크릴릭, 300x600, 동아대학교 소장



이 표면은 상반된 성격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방식이다. 공존은 전래식의 연작 속을 면면히 흐르는 일관된 특징이다. 여기에는 표현하려는 의지와 아무 것도 가하지 않은 무위가 공존한다. 또한 제각각의 특성들이 조화, 균형, 통일과 같은 일말의 의도된 구성의 요구에서 자유롭게 한껏 스스로를 각기 뽐내고 있다. 이 공존을 통해 미술가는 수묵화의 전통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논증해 온 듯하다.

자신의 제작실에서 미술가

“조형산수”들 중 최근으로 올수록 이전의 파격적인 원근법은 안정되어 보이고 따라서 화면 전체가 정묘한 상징으로 다가 온다. 이는 보이는 대상으로서의 산과 마음에 품은 산이 하나로 합쳐져 축약되고 하늘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투시의 과장이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희생은 대지를 디디고 선 인간의 체적에 풍경을 담음으로써 함축된 형태들이 지닌 상징성을 실재하는 삶의 조건에 가까이 옮겨 놓는 시도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버전들은 회화가 결국 삶의 진실을 대리하는 매체임을 확인시키고 전래식이 그동안 “조형산수”를 통해 추구해 온 시대정신과 자연의 본성을 보증하고 있다.

그것은 수업기와 청년기에 전통적 사실을 완숙하게 구사했음에도 관조의 태만을 희생한 것과 추상에 근접한 회화적 완성을 이룩했음에도 인위적이고 가공된 표현을 희생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공존은 바로 이러한 과감한 희생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 * *


1세대 근대 산수화가들이 자신들의 업적을 반복할 즘 훈련을 받거나 본격적으로 등단했던 세대에 포함되는 전래식은 전통 산수화를 극복하기 위해 전통 산수화의 붓질을 부단히 연마했고 그 속에서 자신이 속한 시대의 새로운 어법을 모색했다. 그는 회화의 평면이 지닌 가능성에 주목했고 전통 산수화의 안일한 재현이나 관조를 희생함으로써 칠, 스며듦, 여백과 같은 그 표면의 근본을 조명해내는 회화에 도달할 수 있었다.

거기에 머물지 않고 보이는 사실과 보는 이의 마음을 통합하는 “조형산수”를 개발함으로써 인간의 체적에 조회되는 상징적 공간을 역동적으로 구현해냈다. 그는 그의 세대가 고뇌한 구상 대 비구상과 같은 극단적 사고에 치우치지 않고서도 그 양자를 모두 포괄하는 분명한 지표가 회화의 근원적 통합에 있음은 자신의 매체를 통해 논증하고 있다. 간간이 회화의 종말과 예술의 위기에 관한 염려가 따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증폭하는 시각매체의 다양한 실험들 속에 들려온다. 여기에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희생하면서 새로운 곳에 도달해 가는 전래식의 회화적 전개는 중요한 암시로 다가온다. 그는 말한다. “회화란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탄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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