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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생활 속의 중도(中道) : 이왈종의 그림세계


김종근 / 미술평론가   /   2004. 3. 3.
 

서귀포 생활속의 중도(中道)
                              이왈종의 그림세계


  생활속의 중도, 혼합재료



                                          김종근, 미술평론가, 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


1. 문패 없는 집


눈발이 분분한 저녁 한라산의 한 변두리 서귀포에 당도했다. 바다는 이미 검은 옷으로 제 얼굴을 가린 채 푸른 기를 감추었다. 바다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약속도 지키지 않고 무례하게 지각을 했다고 토라진 냥 제 모습을 좀체 내어 놓지를 않았다. 야자수 나무가 비스듬히 굽어져 있는 길옆으로 형광등 불빛만이 정방폭포 주차장을 가리키고 있었다. 7시 반에 이왈종 화백과 폭포가 있는 그 주차장에서 만나자고 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는데 슈퍼마켓 여주인이 넙죽 물어온다.

“도 닦는 사람집이요?… …아 저 집”이라고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의 집 앞에 도착 했건만 그의 이름을 단 문패는 없었다. “281 - 2  中道觀”. 적어도 제주도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하다.

      이왈종

그는 그의 이름 대신 거저 “도 닦는 사람” 정도로 혹은 “중도관”으로 통했다. 안채가 훤하게 보이는 어두운 집에서 손을 내민 그는 이미 제주도의 현지 사람이 다 되어 있었다. 손으로 문을 열기도 전에 그는 발로 철대문 아래 부분을 쾅 찼다. 문은 그제서야 시원스럽게 열렸다.


저녁이지만 정원은 초라하고 쓸쓸함이 묻어났다. 입구 왼쪽 옆에 휘휘 늘어진 매화나무가 옷을 벗고 있고, 정원 가운데에는 동백나무만 빨갛게 꽃을 피운 채 뜨거움을 게워내고 있었다. 이른 아침까지. 그 동백꽃은 어디서 많이 본 듯 핏빛이 선연하고 낯설지 않았다. 집안에는 그림들이 여기 저기 쌓여 있었다. 이왈종 그는 이렇게 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삶을 찾기 위해 그 지긋지긋한 서울을 떠났는지 모른다.


서울 인사동 사거리에 대충 서 있으면 그리운 사람들 중 누구나 다 만날 수 있다. 파리에 오랫동안 있다 와보니 이젠 인사동에서 조차 이왈종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나는 퍽 서운했었다. 그에 대한 나의 기억은 성품에 있어서는 매우 부드럽지만, 생각에 있어서는 단호했다는 것이다. 시기와 질투, 힘겨루기가 만연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부질없으며 의미가 없다고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곧장 제주도로 간 것은 적어도 내겐 충격이었다.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그런 교수 자리에 가고 싶어 하는가. 그 동안 벅적거리는 서울을 떠나지 못한 채 교수병을 앓고 있는 듯한 모습들을 지금도 나는 매일 만난다. 그렇다고 나는 그들을 비난하거나 욕할 수는 없다. 어찌하랴 교수가 되든 아니든 “작가는 작품으로 말할 뿐이다”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진리이다.


둘러보니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모두들 가슴에 어려움을 하나 둘씩 숨기며 살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화랑가가 썰렁해서 인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 사이에서 부쩍 미술계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많은 것 같다. 이런 때에 나는 수많은 작가들이 부침 했던 시절의 1970년대와 1980년대 작가들의 흔적을 소상하게 비교 더듬어 보고 있다.

      생활속에서-中道의 世界, 1990
       한지에 먹과 혼합재료, 62x97


거기에는 수상(受賞)후 화려하게 매스컴의 조명을 받으며 화단에 등장했던 무수한 작가들의 이름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그러나 오늘 다시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려 호명하지만, 지금 그들의 이름은 있건만 화가로서의 작품과 명성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한때는 모두들 한국미술을 짊어지고 갈 용기 있는 작가들이었는데. 그들 중에는 이제 화가보다는 대학교수라는 명함이 더 크게 보이고 그게 오히려 더 잘 어울리는 선생님으로 남아 있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기울어져 가는 우리의 미술계를 보면 안스럽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왈종이 선택한 그 때의 그 결정은 옳았다. 나는 아직도 단호하게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그를 생각할 때마다 폴 고갱이 떠오른다. “나는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타이티로 가서 영원히 살기로 그렇게 하면 나는 평화와 자유 속에서 나의 남은 생을 보낼 수 있으리라”.
폴 고갱은 그렇게 예술의 도시 파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 그리고 그는 호소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라고 되물었던 그리하여 마침내 인간이 살아가는 길과 슬픔 그것을 위대한 명작으로 풀어냈던 원시의 화가 폴 고갱. 이왈종이 우리에게 특별히 매력적인 것은 다음 두 가지일 것 같다 . 마치 고갱이 그랬던 것처럼 서울 사람들과의 주저없는 화려한 결별이며 또하나는 외딴섬 제주에서 그 어느 속박없이 자유롭게 붓가는대로 예술만을 위해 살수 있으며 그 모든 관능적인 삶의 모습을 빠짐없이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주생활 중도, 1999, 한지에 혼합재료 
   170x133

그가 이 복잡한 서울을 떠나 풍광이 좋은 섬 제주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 일찍이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흐르는 강물에는 뛰어 드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왈종은 그 흐르는 강물 속에 휩쓸려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릴 것을 벌써 우려 또는 경계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가 추구하고 있는 지금까지의 예술세계가 그렇고 그가 일찍이 서울을 떠나 말들이 살만한 제주로 간 사실들이 이를 잘 웅변해준다. 이왈종이 그린 최근작 “생활 속에서”라는 작품을 보면 단숨에 그 그림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인다. 그만큼 그의 그림은 마음을 끄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그의 서귀포의 이야기 신화, 그림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가?



2. 그리는 법에 묶여있지 않는 그림


무엇보다 이왈종은 외형적인 무늬의 화려함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는 흔하게 얼굴을 드러내지도 않고 자신을 알아달라고 세상의 번잡스러운 잡사(雜事)에 끼어들지도 않는다. 그만큼 은둔해 있는 작가 이상으로 불리길 원치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예술은 힘겨워하는 한국화단에서 단연 광배처럼 빛나고 돋보인다. 어디서든 이왈종의 회화는 자유롭고 거침이 없고 당당하다. 폴 클레는 예술작품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작품은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 하고 있지만, 이왈종의 그림은 “그림은 어떻게 해야 한다”라는 도덕론을 모르는 사람처럼 아예 화론에서 비켜나 있다.

제주생활의 중도, 1995, 한지에 아크릴릭, 193x253 



한국화를 하는 입장에서는 한지에 먹을 써야 하고, 이런 저런 입장을 고려해야 할 터인데 그의 회화는 일체의 형식을 철저하게 떠나있다. 그의 미술형식에의 초월은 내용과 기법, 양식적인 부분에서도 그 회화로서의 진면모를 유감없이 발하고 있다. 그는 한지 위에 그림을 그리며 가끔 먹을 사용한다. 그러나 화면 어디에서나 한국화라는 사실을 화면 속에서 강조하지도 않고, 의식하지도 않는다. 그는 보편적으로 작가들이 관심을 갖는 중요한 기초적인 기법인 농담 또한 구하지도 않고, 발묵 또한 구사하지도 않는다.


이 외에도 화면의 여백을 고려하지도 않는다. 일체의 畵道나 전형에서 그의 작품은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회화가 회화로서 충실하게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은 그림이 일정한 형식을 떠나도 어떻게 하면 그것이 그림이 되는가라는 것을 그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자신의 애쓴 열정이나 생각만큼 그릴 수 있고, 노력한 만큼 감동을 줄 수 있다. 작품의 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가 보면서 살고 있는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림만큼 자신과 주변을 반영하는 예술도 드물다.



3. 버릴 수 있어야만 새로 얻을 수 있다:  “실경에서 생활 속으로”


이왈종은 한국화 작가들이 거치는 학습과정을 비교적 성실하게 체득한 작가이다. 1970년대에 그는 탈춤이나 농무 또는 병신춤 등을 주제로 한 전통적인 것과 무속적인 것에 관심을 보였다. 그 후 그는 발묵법이 중심이 되는 實景산수로 옮겨 갔다. 1980년을 전후하여 화단에서 주목받은 그의 작품들은 동양화의 전통적인 필법이나 발묵, 화면의 구성 등에서 전형적인 산수화나 문인화적인 특성을 상당 부분 보여주고 있다.

제주생활의 중도, 1999, 한지에 아크릴릭


그러나 흥미 있는 것은 이미 발묵 작업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인 작품 관목 숲의 배경이 제주도였다는 점과 그가 후에 제주로 간것과는 벌써 예사롭지 않은 고리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가 자신의 세계를 명료하게 구체화 시키는 1980년대 초 “생활속에서” 라는 일련의 연작들에서 그는 화면 구성에서 그만의 독창적인 구도를 선보인다. “생활속에서”(1984, 수묵,채색, 98x120)란 작품은 산 하나를 수묵과 채색으로 가운데 그려놓고, 그 안에 마을을 다시 그 안에 작은 산을 묘사하는 독특한 구성을 보여준다. 물론 그러한 視形式이 그의 회화에 전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생활 속에서”부터 “어락의 세계"에 이르기 까지 일관된 주제를 취하면서 표현기법에 있어서는 대단히 파격적이리만큼 자유분방한 다양성을 구사하고 있다. 1988년에 제작한 “생활 속”에서 라는 수묵과 아크릴 칼라로 제작한 작품은(100x77) 그의 이런 관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그는 3층집 한가운데 층에서 벌거벗고 있는 여자(앞으로도 여러분들은 정사장면과 함께 수없이 보게 되는 풍경이지만)그리고 큰 물고기들이 노니는 이왈종 특유의 테마를 가진 작품이 1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표현기법만 달리 할뿐 동일한 주제로 나타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그는 주제에 있어서 집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가 그리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이며 예술이념이 어느 정도인가를 확인 할수 있는 부분이다.



4.  그의 화두: 양식의 변혁과 채색의 시대

  

그의 회화적 흐름의 변천에 있어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 하나 있다. 이왈종의 삽화가 그의 회화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에 관한 점이다. 1990년초반(93-94)에 들어 그의 작품에 일대 변혁의 기법이 출현하는데 부조형태의 회화작업이 그것이다. 그의 이런 의외의 기술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아마도 조선일보에 이영희의 “노래하는 역사”에 삽화가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때 선보인 삽화는 표현의 깊이나 기법 양식 등에서 기존 삽화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벗어나 회화에 버금가는 괄목할 만한 작업을 발표함으로서 미술계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제주생활의 중도, 1999, 한지에 아크릴릭,
            55.5x46


그가 시도한 이 기법은 흐름상으로는 전통적인 형식을 버리고 진부한 실경과 기법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게 되는 원동력이 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 방법은 자유로운 부조형태에 채색을 끌어들여 의도하는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표식, 입체화 하는등 그의 표현방법에 있어 커다란 전환을 가져왔다. 특별히 소재를 묘사하는 패턴이나 화면 분할법 등은 후에 그의 작품에 훨씬 세련되고 안정된 화풍을 정립하는 기초가 되고 있다.


1995년을 전후한 장지에 아크릴 작업을 보면, 화면 정중앙에 등장하는 하르방이나 물고기 등 다양한 이 형상들은 후에 그의 평면작업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가장 주요한 모티브가 되고 있을 뿐 아니라 한 가지 주제를 특징적으로 다루면서 다른것은 부차적 대상으로 묘사하는 이왈종 만의 화법을 이룩하고 있다. 또 색채의 사용에 있어서도 원색적인 색채를 대담하게 화면 속에 끌어들임으로서 그의 회화에 처음으로 “생활 속에서 중도”라는 강렬한 채색의 시대를 열어 보였다 .  그의 회화세계를 더듬어 볼 때 그가 줄기차게 사용하는 어휘가 있는데 이것이 “중도”라는 어휘이다. 이 단어는 그의 회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으며 이왈종 창작의 핵심을 이루는 화두임에도 틀림없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집착을 끓어야 좋은 작품을 그릴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되 뇌이면서 제주도로 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제주생활의 중도, 2001, 한지에 아크릴릭, 39x32.5
마치 서정걸이 명쾌하게 기술한 것처럼 제주에서의 이왈종 작업은 지긋지긋한 서울의 삶의 더러운 때를 벗겨내는 속세에서의 탈속하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이 시기를 전후하여 “중도의 세계”에 그가 경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은 그의 회화에 모티브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개념 해명의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중도란 무엇인가? 中道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양극 간에서 불자가 선택하는 길이다. 바꿔 말하면 이것은 어느 한곳에 집착을 보이지도 않고, 욕심에서 떠나 있으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평상심의 세계를 지칭한다. 거기에는 불협화음도 없고 사사로운 모든 인간의 물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수도자의 마음과 같은 자세를 말한다.



5 중도의 세계


일찍이 아우구스티누스는 예술을 종교와 같다고 했다. 이와 같이 이왈종에게 있어 예술은 고통스러운 대상은 분명 아니다. 삶의 번뇌스러운 욕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비운 사람, 수행자의 길을 가는 심정으로 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가하면 공자는 논어에서 최고의 名士는 “속세로 부터 떠나는 것” 이라고 했다. 凡人들이 가지는 복잡한 생각에서 행동까지 벗어나 인생에 진정한 의미를 느끼며 살고 싶은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는 속세로 부터 가능하면 멀리 떨어져 이상적인 예술의 집을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제주생활의 중도, 1999, 한지에 혼합재료, 32x42


그것은 다름 아닌 이왈종의 중도의 세계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갖게 되는 사랑과 증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분노와 평정의 그 총체적인 삶을 아우르는 길 그 길이 중용의 삶이자, 함께 하는 삶인 것이다. 그는 “중도는 평등을 추구하는 나의 정신적인 상태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중도는 다름 아닌 모든 것을 있는 대로 보고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는 평등이라는 것이다. 이런 한 예를 우리는 물고기와 말 동식물등 모든 자연물들이 그의 화면에 사람과 함께 어울려 공존하고 있는 모습과 연결해 보면 이런 그의 평등에 관한 인식과 감정을 확인할 수 있다.



6 사물을 보는 법


그의 그림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화면을 구성하는 視點의 방식이다. 그는 1980년대 풍경이나 산수에 있어서도 그 안에 풍경을 다시 재배치하는 구도법을 종종 보인 바 있다. 이 방식이 비록 조형상으로 형식 실험으로 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기존 회화의  관점을 탈피한다는 점에서 가치 있게 평가되어야 될 것이다. 그는 여전히 화면을 구성하는 시각에 있어서는 원근법에 기초를 두면서도 다분히 부감법(俯瞰法)에 의지하고 있다. 이 시형식은 점진적으로 풍경에서 큰 진전을 보이는데 이것은 후에 “중도의 세계”에 도달해 완전한 평면 안에서 모든 사물을 끌어들이는 만다라 같은 구성법의 밑받침이 되고 있다.


그는 종래 서양회화에서 사용하던 투시법이나 명암법등을 피하고 부감법을 택함으로서 그의 공간구성은 가시권이 풍부하고 다양한 효과 그리고 선적인 조형미를 충분히 획득하게 된다. 이것은 결국 그의 내면에는 아직도 동양회화의 사고와 정신이 흐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자화상, 2000, 한지에 혼합재료, 25x18

그가 명암이라든가 형태의 묘사에 있어서도 직관적인 것에 의존하는 인상을 흔하게 보여주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 된다. 그는 다양한 실험 속에서 수평과 수직 등 다방향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시점의 기법을 터득했다. 그의 회화에 종종 상하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집을 거꾸로 묘사한다든가 화면의 중심에 집중된 물체들을 상하의 구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부담 없이 포치시키는 기법 또한 이왈종만의 자유로운 화면 구성이다.


그가 즐겨 그리는 작품 “생활 속에서”라는 시리즈에서 이왈종은 특히 집을 주제의 중심으로 놓는다. 물론 종종 단일한 대상, 말이나 하르방 또는 고기 한 마리를 작품의 중심으로 삼아 화면 중앙에 그려넣지만 그 중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2-3층의 누각이 있는 풍경이다. 거기에는 곧잘 벌거벗은 여자가 있거나 위층에는 정좌한 모습의 인물상이 좌우로는 물고기와 새들이 꽃과 함께 등장한다. 그러나 이런류의 작품에도 그는 대단히 단순하게 그리고 평면적으로 완결 짓고 있다. 이런 그의 형식실험은 중국 근대화가 이가염이 “荷塘消夏”이란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대담한 조형적 실험이 돋보이는 것은 물론이다.

 

이제 우리는 그가 어떻게 그의 작품을 어떤 기법으로 바꿔 왔는가를 보자. 그의 그림은 기법을 본다면 그릇이나 토기를 굽기 전 무늬를 그려 넣거나 긁는 맛을 준다. 또한 질감을 본다면 벽화처럼 희뿌연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그의 그림에 완성법은 매우 단순하다 . 그는 그리기와 긁어내기로 마감질을 한다. 그는 화면 전체에 바탕색을 칠하고 그 위에 흰색이나 회색으로 표면을 덮은 후 제주의 정취를 보이는 이미지를 긁어내는 듯 형상을 담아낸다. 흡사 초등학교 학생들이 우선 크레용을 칠하고 칼이나 딱딱한 핀으로 긁어냄으로써 다양한 효과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는 것과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

        제주생활의 중도, 1999, 한지에 혼합
          재료, 55x42


그의 이미지를 담아내는 표현법 역시 문학성 짙은 회화를 보듯 서술적이다. 통통배를 타고 고기를 낚는 모습이며, 2층집에 춤추는 여인, 그 위층에 전혀 에로틱하지 않은 표정으로 벌거벗고 정사를 나누는 장면 등이 그의 작품 풍경에 주조를 이루고 있다. 이 모든 풍경은 그가 흐르는 강물에서 뒤섞이지 않으려고 찾아간 곳, 추사가 고독한 삶과 그리움, 설움을 삭혔던 제주의 풍광에서 모두 되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마치 고갱이 타이티로 가서 한폭 한폭 담아냈던 것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유유자적하고 청정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만이 사는 세계, 더도 덜도 말고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 中道觀亭의 서귀포에서 그는 평상심의 신화를 짓고 있다. 중도의 세계, 이 세계는 인간이 욕망이라는 굴레를 쓰고 있는 한 쉽게 득도 할수도 이루어지지도 않는 경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왈종은 이런 세계를 희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천상 예술가 일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모습엔 마치 인간은 인간 본성의 고결성을 유지하며 속세의 일상사를 초월하여야 한다고 하는 ‘정적(靜寂)주의’ 사상의 분위기 까지 느끼게 한다.



7. 魚樂의 세계


그의 내면은 이렇듯 숭고하지만 그의 그림은 다소 장난기 있고 희화적이기 일쑤이다. “생활 속의 중도”에는 강물이 흐르듯이 부드럽게 널려있는 일상속의 모습들이 선문답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새도 날아다니는가 하면, 자동차, 배, 텔레비전, 사슴, 꽃 등 그의 그림 어느 구석에도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로 가득 차 있다. 마치 만다라처럼 하나의 공간 안에 풀어놓아 같이 공존하고 있다. 이런 그의 그림은 이제 새로운 이왈종의 특허처럼 회화 양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와 더불어 그가 오랜 시간 생각하고 애정을 보이고 있는 “어락의 세계”도 우리들에게 많은 인상을 남겨준다.

제주생활의 중도, 1999, 한지에
  혼합재료, 138x97

결코 작은 물결을 꿈꾸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거대하게 물결을 몰고 다니는 고기들만이 가질 수 있는 즐거운 세계  그것이 그가 말하는 어락의 세계가 아닐까. 작가가 이렇게 그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이 유행에 따라 흔들릴 때도 흔들리지 않았고 어떤 그림이 득세를 올릴 때도 그는 탐닉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표현 언어에 충실했고 그 정신을 담금질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만큼 스스로를 개혁해가며 작가정신과 치열한 삶의 체취를 한 그림 안에서 보여주는 작가도 흔치 않다. 그래서 언젠가는 모슬포 해변 토방에 머물던 추사의 歲寒圖 처럼, 서귀포에 이중섭의 거리처럼 이왈종씨의 이름을 딴 골목길도 생기게 될지도 모른다고 나는 감히 생각 한다.


 

돌아보면 지금 한국화는 한국미술의 흐름이나 미술대학에서의 상황으로 보아 최대의 위기에 놓여있다. 이 위기의 절박함 가운데에서도 나는 이왈종이 보여주는 독자적인 중도의 풍속화가 한국화의 흔들림에 큰 힘이 될 것을 믿는다. 그의 예술에 대한 대담(서정걸, “삶의 이상향을 담은 중도의 세계” <월간미술>. 1994년 7월호)에서 그의 예술에 대한 기본적인 작가정신이 우리의 이런 신뢰와 믿음을 갖게 함은 물론이며 비장하기까지 하다. “작가는 외로워야 한다, 외로움은 작가에게  매우 유익한 것일 수 있다. 내게 있어서 외로움은 작업 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일이 어찌 외롭지 않고서 가능한 일인가?”

  제주생활의 중도, 1999, 한지에 혼합재료,
  55x47



8. 외로움만이 예술이다


이왈종, 그렇게 외로워하는 그가 나는 그리웠다. 그래서 2월 초순, 나는 그에게 다시 서귀포에 오겠노라고 덥석 약속했다. 그는 나에게 잊어서는 안되는 예술가의 길이 어떤 것인가를 이미 미술대학에 사표를 던지면서 가르켜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삶이 어떻다는 것을 서귀포에서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떠나오기 전 우리는 그의 그림 속에 나오는 “소라의 성”으로 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루에도 두세번씩 만났다는 친구가 운영하는 소라의 성에서 우리는 해물뚝배기와 옥돔으로 그의 그림에 모델인 푸른 바다를 보며 넉넉한 아침을 했다. 저녁에 둘러보던 그의 작업실은 아침에 더욱 빛을 발했다. 오랫간만에 대작들이 여기 저기 놓여 있는 작업실을 본 탓이었을까. 녹차를 나누면서 그는 최근 향로작업을 했노라고 불쑥 향로 스무개 쯤을 내보였다. 의외였다. 웬 뜬금없이 향로작업이라니 그리고 그것들 모두가 울퉁 불퉁 영락없는 남근 형상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제각각이었다.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만 가슴에 잊을 수 없는 정을 남기고 운명을 달리한 친구 김철우를 위한 옛정과 그리움. 그를 위해 향을 피울 수 있도록 가슴 시리게 담은 작업이라고 했다. 그래서 일까 분위기는 우울했지만 거기에도 이왈종 특유의 에로틱한 정사장면들이 다양하게 각인처럼 새겨져 눈길을 끌었다. 뿐만 아니라 마치 모든 삶과 죽음, 슬픔과 이별이 어느 가수의 노래 “네박자”처럼 우리들 인생사가 그의 그림 속에서 진하게 배어났다. 그것은 마치 오르세이 미술관에 있는 고갱의 나무 목판의 절절한 그림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창작을 향한 그의 불타는 열정은 그의 화실 여기저기를 한참 둘러보고서야 그가 서귀포에서 진정 구하고 싶었던 집념을 헤아릴 수 있었다.

  제주생활의 중도, 1999, 한지에 혼합재료, 55x47


그는 이런 대작을 한 백 여 점만 하고 싶다고 했다. 벌써 그런 작품이 20여점을 넘었지만. 나는 비로소 눈치를 챌 수 있었다. 그리고 왜 그를 만나는 데는 하나의 원칙을 꼭 알고 있어야만 하는가도. 오후 5시 이전에 그는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아는 제주 사람들은 5시 전에는 전화 연락이나 방문을 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가 온전하게 전업 작가로서 그렇게 많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지를 말해주는 가장 확실한 답안이기도 했다. 나는 농담으로 건넸다. “ 여기 있으니까 좋겠어요, 전시 오프닝에도 안가고 , 경조사에 돈도 안나가고 돈 많이 .......” “글쎄 그럴 줄 알았는데 여전히 서울집엔 서울집데로 청첩장이 날아오고, 여기는 여기데로 그런게 많아 이중으로 나가 별로 모은것이 없다고 ....” 말을 얼버무렸다.



9. 나는 끝내 실망 했다


나는 도착하기 전 늘 그의 그림 속에 나오는 환상적인 이층집을 상상했다. 위층에서는 런닝 셔츠만 입은 중년의 사내가 다리를 꼰채 TV를 보는 장면이, 아래층에는 벌거벗은 남녀가 대낮에 부둥켜 안고 있는 모습이 언제나 희화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 서귀포 앞바다에서 나는 그런 모습을 정말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2층집은커녕 아주 작은 TV에 차를 끓여주는 사람도 없어 매우 실망했다.


어쩐지... 그러나 그런 분위기는 그의 화실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에도 즐겨 쓸만한 색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그의 집에는 색도 없고, 그림에도 색이 없었다. 더우기 단층으로 어수선한 방마다엔 여기 저기 그리다만 그림, 도판 , 입체 조각들이 널려 있었고, 큰 작업실에는 대작이 어떤 것들은 둘둘 말린 채로 5-6백호 남짓 될 그림들은 벽에 붙여 있었다. 이것이 그가 이번 가나에서 선보일 작품들의 일부였다.


이번 그의 작품전은 무엇보다 그가 초기부터 인간과 그 삶에 모습에 눈독을 들여온 중도의 세계를 보여 주는데 큰 의미가 있을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의 일관된 제주에서의 중도의 생활상이 그의 야심찬 대형작품을 통해 어김없이 그리고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다.

제주생활의 중도, 1999, 한지에 혼합재료, 84x70

뿐만 아니라, 도판작업이라 부를까? 그릇이라 부를까? 벽걸이로 부를까? 걸수도 있고 놓을 수도 있는 도판작업이 그의 제주생활의 담담한 일상생활을 새롭게 상기 시킨다. 그들은 삽화처럼 또는 이중섭의 은지화처럼 단순하나 경쾌하고 색이 없으나 지루하지 않았다.


그는 퍽 부지런해 보였다 . 잠시도 쉬려하지 않았고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어했다. 그가 다른 쟝르에 조금씩 눈길을 주는 것도 그의 이런 성격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의 세계에는 중도의 생활을 지나오면서 풍부하고 다양한 작업영역을 보여 주고 있다. 그 작업태도는 일견 피카소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진하게 풍기고 있다. 꼴라쥬, 도판 , 보자기, 도조, 입체작품들 등등 이왈종은 그 표현 영역을 쟈유스럽게 넘나든다. 그러나 이 작업들이 전체적으로 보면 그가 평소에 추구해온 중도의 이야기를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왈종의 제주시대의 예술세계와 그가 이룩하려는 세계관에 대한 방향을 가늠케 한다.


지천에  널려있는 귤을 까다말고 그는 난데없이 한 무더기의 천 꾸러미를 가져왔다, 이번에 같이 선보일 것이라며. 그것은 다름 아닌 오색의 천 조각을 가지고 일일히 오리거나 꿰메서 이은 하나의 꼴라쥬로 만든 거대한 보자기 였다. 대략 5 - 600호의 크기였다. 나는 솔직히 당황했다. 그래도 남자가 좀스럽게 보자기라니 하지만, 그러나 볼만 했다. 각자의 색채들이 서로 빚어내는 아름다움이라든가 그 변화로운 형태들이 엮어내는 조형미라든가, 구성의 절묘한 맛들은 차가운 추상화가들이 보여준 세계를 능가 했다. 아마도 밥상의 보자기를 본 뜬 것이 아닐까 의심받는 몬드리앙의 작품과 완벽한 대비를 이루고 있어 한층 그 볼 꺼리를 더했다.

  제주생활 중도, 1999, 한지에 혼합재료,
  167x139

무엇인가 해보고 싶으면 참지 못하는 그의 장인기질이 언듯 보였다. 그는 천성이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는 부지런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그는 천성이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옷을 샀는데 어느 한 부분이 혹은 소매가 걸기적 거린다든가 하면 그는 옷을 자르거나 도려낸다. 겨드랑이 부분에 옷자락이 불편하면 도려낸다. 팬티도 불편하면 오려내고 다시 기워 입는다. 아마도 그의 이런 바느질 솜씨와 견딜 수 없는 무료함이 저 거대한 보자기를 오색으로 촘촘히 짜깁기 했을 수 있으리라.

   

나는 잠깐 들리러 왔지만 그의 숨어있는 비장의 장기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그러면서도 그의 회화가 가지고 있는 경쾌하되 흔들리지 않고 가벼운 세계이되 깊은 정취를 풍기는 담백한 세계와를 혼동하지 않으려 애썼다. 마치 고갱이 그랬던 것처럼, 서울 사람들과의 주저 없는 화려한 결별. 외딴섬 제주에서 그 어느 속박 없이 자유롭게 붓가는데로 그림만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 그 모든 관능적인 삶의 모습을 빠짐없이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는 중도관의 수도사 이왈종. 이것이 그가 우리로 하여금 그의 그림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가장 큰 매력이자 이유라고.

제작실에서 작업 중인 미술가



10. 동백나무에 셋방 사는 이왈종


다시 서귀포 앞바다에 노을이 일렬종대로 내려오고 있었다. 중도관을 나서면서 정원 가운데 붉게 타고 있는 동백나무에 눈을 얹었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데 동백나무에 방 한 칸 얻어 쪼그리고 있는 그의 그림이 창문을 가렸다. 그는 서귀포 중도관에 집을 짓고 살고 있지만, 정작 그의 집은 그 동백나무에 방 한 칸을 얻어 셋방살이 하고 있는 것이 그의 삶이 어른 거렸다.  서귀포 앞바다에는 여전히 정방폭포 근처 눈덩이들이 떼를 지어 바다로 풍덩 풍덩 뛰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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