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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현대의 민감한 경계에 선 한국화의 새로운 표정: 우종택의 신작


학예연구팀   /   인천대학교 미술학과   /   2008. 4. 2.
 

전통과 현대의 민감한 경계에 선 한국화의 새로운 표정

                                      우종택의 신작



                                               김상철, 월간 미술세계 주간


이른바 한국화를 지향하는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전통이라 일컬어지는 고전적인 심미체계를 여하히 수용할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즉 전통과 현대의 조화, 혹은 전통적 조형의 현대성 획득 등으로 표현되는 해묵은 과제가 바로 그것이다. 작가 우종택의 작업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반응과 선택의 만만치 않은 고민이 여실히 담겨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수묵을 기저로 한 평면적 조형과 함축적인 표현, 그리고 여백의 운용 등을 통하여 전통적인 조형 체계를 수용하고 있다.

줄서기, 2007, 한지에 수묵, 혼합,180x180


작가가 이러한 수묵의 조형 체계를 채택한 것은 일단 그 조형적 가치에 대한 원칙적인 긍정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지만,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전통에서 비롯된 일종의 관성(慣性)이라 할 것이다. 즉 수묵, 혹은 전통적인 조형 체계를 목적성을 띤 필연적인 이유에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체할만한 보다 효과적인 재료나 표현 방식을 확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조형 체계를 원용하고 있다 함이 보다 적확할 것이다. 결국 작가의 작업은 전통과 현대라는 민감한 경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종의 모색이자 추구이며, 이는 단지 작가 개인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늘의 현대 한국화가 당면한 핵심적인 내용들과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로서 우종택의 작업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예의 풍부하고 임리(淋漓)한 수묵을 바탕으로 인물 군상들을 표현한 작업들을 통해서 일 것이다. 당시 그가 보여준 수묵에 대한 풍부한 감수성과 독특한 해석 능력은 인상적인 것이었다. 모필에 의한 섬세하고 감각적인 필선들을 대신한 분방한 발묵을 통한 형상의 구축은 전통에 대한 그의 관심과 이해가 경직되고 정형화된 것이 아니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러하기에 그의 작업들은 개별적인 치밀한 조형적 완성도를 지니는 것이었다기보다는 전체가 어우러져 그만의 독특한 특징을 구축해 내는 것이었다.

줄서기, 2007, 한지에 수묵, 혼합, 202x184

그것은 안정된 조형의 틀을 구축한 것이라기보다는 미처 분출되지 못한 풍부한 조형적 가능성과 작업에의 집착, 열의 등을 내재한 진행형의 작업들이었으며, 전통과 현대라는 해묵은 문제의 민감한 경계에 놓여 있는 것이었다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근작에 들어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변화의 양태는 최근 작가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을 구체적이고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소재에 있어서는 여전히 인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도시인으로 개괄되는 현대인의 삶의 양태를 표현하고 있다. 이전의 작업들은 <줄 서기>라는 일련의 제목으로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도시민의 삶을 은유한 것이었다. 이에 비하여 근작들은 동일한 공간과 대상을 다루고 있지만 은유와 표현의 양태가 사뭇 다르다. 과거 호방한 수묵을 표현되었던 인물들은 상대적으로 정제되고 함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정면을 응시하지 못하고 그저 엿보듯 곁눈질 하는 도시 인물의 표정들은 왠지 무엇엔가 주눅 들린 듯 안쓰럽다. 그것은 일종의 연민과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 같은 것을 짙게 풍기는 감상적인 설정이다.

줄서기, 2007, 한지에수묵, 혼합, 130x160


이러한 인물들의 불안정한 시선이 머무는 곳이 바로 그들이 어렵사리 버텨온 삶의 일상이며 실존의 현장일 것이다. 과감하게 변형되고 왜곡된 인물의 표정들은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 풀린 눈동자로 불안한 시선을 옮긴다. 이들은 저마다 화분, 혹은 꽃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작가는 꽃을 희망과 시작의 상징으로 풀어 이야기한다. 일견 도식적인 해석일 수도 있지만, 작가는 이러한 설정을 통해 특정한 메시지를 구축하고자 한다. 그것은 도시인에게 보내는 격려와 안식의 암호일 수도 있으며, 혹은 작가 자신에게 은밀한 암시를 보내는 조형 부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꽃은 마치 담채를 연상시키듯 옅은 색조를 띄고 있다. 비록 이러한 색채는 담백하고 절제된 것이지만 화면의 분위기를 일신하고 있다. 이는 이전 작업에서 상대적으로 절제 되었던 색채의 구사가 주도적이고 의식적으로 도입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작가의 작업은 분명 수묵을 바탕으로 오늘에 이어져 온 것이다. 그러나 근작들에 나타나는 일련의 새로운 요소들과 변화의 단서들은 과연 작가의 작업이 이전의 그것들과 궤를 같이하며 예측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가 하는 점에 있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언뜻 드러나는 양태로 미루어 본다면 작가는 수묵이라는 전통적인 조형 방식에 일정한 부담감, 혹은 일탈의 충동을 느끼고 있음이 여실하다. 이는 앞서 지적과 같이 수묵이 필연적인 당위성을 전제로 선택되어진 조형 방식이 아니라, 일종의 관성과 타성에 의해 받아들여진 양식이라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줄서기, 2007, 한지에 수묵,
      혼합, 130x69
즉 작가는 작업의 전개에 따라 점차 형성되어진 주관적인 조형 심미와 자각을 통해 이를 보다 효과적으로 수용하고 발현할 수 있는 표현 방식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비록 수묵의 얼개를 차용하고 있지만 굳이 그것을 경직되게 해석하거나 수용하지는 않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크릴 등 이질적인 재료의 적극적인 도입과 과감한 인물의 변형과 표현에서 드러나는 구체적인 이미지의 형성 등은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드러내는 일종의 단서와도 같은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전통과 현대라는 해묵은 논제에서 작가는 자신의 주관과 감성, 그리고 그간 축적되어진 조형적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방향을 설정하고자 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것은 전통이나 현대라는 이분법에 의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을 온전히 반영해 낼 수 있는 솔직하고 진지한 것이다. 이를 전통, 혹은 현대에 놓고 거론하는 것은 사족에 다름 아닌 것이 될 것이다.


작가의 새로운 모색과 변신은 소극적이고 부분적인 것으로 보여질지 모르지만, 그것이 내재하고 있는 고민의 깊이는 드러나는 것 이상으로 진지하고 심각한 것이라 여겨진다. 전통적인 수묵이 형이상학적인 이상의 세계를 거니는 것이라면, 작가는 이를 살아 숨 쉬는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한다. 수묵이 심안(心眼)에 의한 정신적인 가치를 강조한다면, 작가는 자신의 육안(肉眼)에 의한 긍정을 전제로 보다 실재적인 대상을 표현하고자 한다. 전통적인 조형관이 정적이고 소극적이며 은유적인 방식을 취한다면, 작가는 보다 적극적이고 직설적이며 감각적인 표현을 지향한다.

줄서기, 2007, 혼합재료, 90x110


결국 작가가 추구하는 새로운 작업의 지평은 전통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이의 구체화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는 단순히 전통적인 심미관이나 조형 체계에 대한 반발과 역설로 이루어지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진지한 해석과 충분한 소화를 통해 절로 배태되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 작가의 작업은 장차 점진적인 변화의 과정을 거쳐 점차 지향하는 바를 구체화해 나아갈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완만하며 점진적인 것이겠지만, 그간 작가가 작업을 통해 보여주었던 구체적인 성과들을 통해 미루어 볼 때 이는 결코 요원한 일은 아닐 것이다. 작가의 분발을 주문하며 그 성과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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