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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목하지 않는 자연과 예술 : 이미숙의 판화


편집취재팀   /   2007. 9. 1.
 

반목(反目)하지 않는 자연과 예술

        이미숙의 최근 판화연작


                                                                                     김정락, 미술사가


서구와 동양의 자연은 상이하다. 그것은 우선 자연이 갖는 지리적 다름에 근거하긴 하지만 오히려 그곳에 살았던 인간들이 품었던 자연관의 차이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할 것 같다. 시각예술은 오래 전부터 이러한 차이를 매우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특별히 자연과 예술과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그 거리가 진정 멀다고 할 수 있다. 서구의 전통적인 예술철학은 자연과 예술을 서로 다른 극단에 위치시킨다. 따라서 예술은 자연과 경쟁하는 그리고 상반되는 인간만의 독특한 행위이자 그 생산물로서 정의되고 있다.

        자연으로부터-관계, 2007
       한지위에 드라이포인트

반대로 동양에서는 예술과 자연이 동일한 맥 속에서 연관된다. 그러므로 동양적 예술관은 대상과의 일치 혹은 친화력을 더 문제 삼는다. 서구의 이분법적 자연관과 동양의 일원론적 예술관은 그래서 공통점을 갖기가 어렵다. 작가 이미숙은 언급된 대척점에 있는 두 관점 사이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는 물론 작가의 성격을 일반화할 위험이 있을 것 같다. 그러므로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


작가에게 관념은 자연의 즉물적 존재성보다는 자연에 관한 감성적 본질에 먼저 닿아있다. 이것은 작가가 여성으로서 보유한 감수성에 대한 선호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동양적 자연관에 밀착된 사고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작가의 이러한 감수성을 단지 관념적인 차원에서 머물게 하지는 않는다. 이전 작가는 자연으로부터 받은 감성을 추출하여 관념적 성격이 짙은 형상을 만들어냈었다. 그 형상들은 단견에 모더니즘의 순수주의와 결합된 관념적 결정체로서 보인다.

   자연으로부터-겹2, 2007, 드라이포인트, 43x90

그리고 현대성이 추구했던 비 언술적 언어체계로서 구체성을 털어냈던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 속에서도 작가는 의지된 감수성을 선호했었고, 이러한 태도와 자세는 다른 모더니즘의 작품과 구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감수성은 생명에 대한 미시적 시각을 바탕으로 보듬어지고 있다.


작업이 선(線)적으로 이루어진 점에 대해서도 중용적인 자연관을 감지하게 한다. 선적인 이미지는 관습적으로 동양적 사유와 예술행위를 떠오르게 하지만, 이것은 동서양의 차이를 떠나 직접적으로 자연과 교통하려는 예술의지로서, 즉 일차적인 그리기로서 인식되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선으로 그려진 혹은 그것으로 촘촘히 직조(織造)된 식물의 형상들은 자연이 작은 체세포로 조밀하게 구성된 창조물인 것처럼 그러한 창조과정을 모방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자연의 외피만을 본뜨는 서구적 예술형식이 아니라, 그 본질적인 것까지 추적하여 재구성하려는 동양적 예술관에 가깝다.

자연으로부터-겹6, 2007, 한지위에 드라이포인트
73x134

하지만 형상에 대한 접사적인 시선은 오히려 서구의 미술에서 배양되어온 관찰하는 눈의 그것과 같다. 또한 미국작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꽃을 연상시키는 확대된 식물의 형상과도 연관을 지을 수 있겠다. 그러나 작가는 관찰하는 시선과 더불어 자연물인 대상에서 감성적 선율을 부여한다. 이러한 동시성으로 인해 감성과 이성이 식물의 줄기처럼 연결되고 함께 맥놀이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구조된 형상들은 동양적 사유의 관념체계를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사물에 대한 치밀한 해석을 불러오게 만든다. 물론 이 양자가 서로를 북돋는 그런 식으로 말이다.

   

작가 이미숙의 작업은 친환경적인 방법을 지향한다. 작가는 최근 미국에 체류하면서 받은 미술학교의 기억을 이야기 하였다. 그곳에서 받은 인상은 작가가 추구해온 친자연적 형상작업에 촉매제가 되었다. 판화작업에서 노출되기 쉬운 유해물질과의 접촉이나 그러한 환경 속에서 오랜 동안 작업해야하는 한국의 경우와는 달리 철저한 교육과 제도로서 무해한 작업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것에 감응한 작가는 나름대로 개발한 방법론을 이번 전시를 통해 제시하려고 한다.


그의 작업은 판화 중에서도 목판화 다음으로 수공적인 성격이 강한 드라이포인트이다. 그러나 이전 동판이나 아크릴과 같은 일반적인 판재가 아니라 폴리에스터 필름이라는 것을 사용하였다.

자연으로부터-관계4, 2007, 한지위에 드라이포인트, 73x134
얇은 비닐 막과 같은 판이라고? 그러나 이것은 단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작가는 증명한다. 이 필름은 오히려 아크릴보다 더 민감하고 더 견고하게 이미지를 담을 수 있는 매체이다. 그리고 더 유연하게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대안적인 재료이다.


그와 더불어 작가는 기존의 판화지 보다는 한지(더 자세히는 순지라고 한다)를 사용한다. 드라이포인트의 선을 받아들이는 이 종이는 기존의 판화지보다 더 예민하고 더 순수하게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순지 위에 찍혀진 형상들은 그래서 조용한 수묵화를 보는듯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오로지 선들로 구성된 형상들의 순수성은 순지의 차분함과 결합되면서 우리의 자연미감에 알맞게 어울린다. 무난한 어울림과 튀지 않는 정서적 친화력은 바로 작가의 꾸준한 작업이력을 대변해 준다. 작가 이미숙에게 자연과 예술은 무난하게 친근한 사이가 되고 있다.

       노스 캐롤라이나대학교 해네스 미술센터에서
       전시 중인 이미숙의 판화들, 2007. 5.



 

미술가의 말


선(線 혹은 禪)에 담은 자연
폴리에스터 필름을 이용한 드라이 포인트



                                                                                     이미숙, 미술가


최근의 작업에서 내가 추구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자연을 추상적으로 재현하는 것으로부터 자연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오목판화의 영역에서 폴리에스터 필름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몇 년간, 나의 작업은 추상적인 방식으로 자연을 표현하고 있었다. 지난 해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 채플힐에 도착했을 당시에도 외면적으로 봤을 때 추상적인 형식을 띠고 있었고,

        노스 캐롤라이대학교 해네스 미술센터에서
       전시 중인 이미숙의 판화들, 2007. 5.
주로 스텐실의 방법으로 개념적인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오목판화의 재료로서 폴리에스터 필름의 활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동시에 구성적인 추상에서 자연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초점이 맞춰지게 되었다. 그 결과, 폴리에스터 필름에서 많은 장점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유연성, 투명성, 경제성, 안전성, 그리고 편리성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2007, 5월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교 핸즈아트센터 전시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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