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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자를 창출하는 방식 : 엑시스텐즈의 틀과 장치


편집취재팀   /   2005. 2. 1.

 

 

관람자를 창출하는 방식

                         엑시스텐즈의 틀과 장치



이희영, 미술평론가


“엑시스텐즈(eXistenZ)”는 크로넨버그(Cavid Cronenberg) 감독이 암살의 위협에 처한 작가 루시디(Salman Fushdie)

          엑시스텐즈 게임기에 접속하여 가상세계로 들어가는
        겔러와 테드

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 제작의 발상을 가졌다고 한다. 이 영화는 1999년에 발표되었고 이내 같은 해에 발표된 “매트릭스(The Matrix)”나 그것보다 훨씬 앞선 “토탈 리콜(Total Recall, 1989)”과 곧잘 비교되었다. 가상의 세계에 대한 극명한 사실성이 이들과 공유하는 것으로 보는 반면 이야기의 전개는 다소 지루하고 진부한 것으로 비교들 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인간과 문명을 새롭게 조명하는 매체로 영화를 확장시킨 점에서 같은 해에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했다.

              비죵, 알타미라 동굴 벽확


사상과 종교적 견해로 암살 대상 목록에 오른 루시다를 크로넨버그가 자신의 영화에서 게임 설계사로 바꾸어 재현한 것에서 보듯이 그는 자유주의의 문명이 거의 완수되어 가는 20세기말의 최첨단 환경과 그 위협에 노출된 예술가 개인간의 극단적 대비에 주목한 듯하다. 이 영화는 이러한 대립을 1990년대가 희망하는 미래의 디지털 환경에 적용함으로써 과거를 요약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

현실의 자의식과는 상관없이 게임
속 성격으로 욕망을 표출하는
두 사람

영상매체의 역할임을 확인시켰고 당시 영화계의 관심을 끌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러한 역할이 곧 현대미술이 실험하고 있는 숱한 양태들 속에 유지되는 역사적 일관성과 유사한 것으로 본다. 영화는 시각예술의 전통에 비해 더 많고 다양한 서술을 매체로 삼는다. 이 서술은 현실과 사람을 재현하는 친근한 방식이다. 한 편의 영화를 지탱하는 몇 가지 구체적 특성을 통해 난해해 보이기까지 하는 현대미술에 쉽게 접근할 길이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영화관에 실재하는 관람자와 동일한 방향으로 단상을 주목하는 관람자들, 그리고 벽을 뒤로한 채 전방을 향한 발표자가 등장한다. 발표자는 안테나(Antenna)연구소의 게임 설계사 엘레그라 겔러(Allegra Geller)이다. 그녀는 자신이 투입되어 새로 개발된 엑시텐즈 게임기를 관람자들 앞에서 직접 시연하려고 한다.  그 때 객석의 한 청년이 겔러를 총격하면서 소란이 인다. 같은 장소에 있던 하급보안사원 테드(Ted Pikul)가 뛰어들어 그녀를 부축하여 피함으로써 영화는 이 둘의 도주 행각으로 채워진다.

 

        장욱희, 홀로세의 초상

이 장면에서 영화관에 실재하는 관람자와 가공의 영상물간의 첫 충돌이 있다. 이벤트가 진행되는 단상을 향한 화면 속의 관람자가 스크린을 바라보는 실재하는 관람자와 유사한 포맷으로 공간을 구성하는 점에서 이 충돌은 완화된다. 영화를 보는 관람자는 곧 이어지는 갑작스런 충격으로 어느덧 현실에 중요한 문제를 잊고 영화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몰입의 유도는 잘 제작된 영화들이 갖는 보편적 틀이다. 틀은 스크린 넘어 가상의 세계와 관람자가 실재하는 현실 사이에서 이 둘을 관련짓는다. 테러를 자행한 청년의 모습은 이 영화의 틀을 두드러지게 한다. 관람자에게 등을 보이며 화면으로 돌진하는 테러범은 분명 가상의 세계에 속한 배우가 아니라 불 끄진 객석에서 스크린으로 뛰어드는 현실의 사람과 동일한 모습으로 비쳐진다. 

이로서 실재하는 관람자의 영역과 스크린 넘어 이미지의 영역 사이에 심각한 교란이 발생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람자는 이 사실을 영화를 보는 관습에 의해 잊어버린다.

 

난해해 보이는 최근의 설치 미술은 바로 이러한 상반된 영역간의 긴밀한 충돌을 문제 삼고 있다. 미술의 역사를 소급할 때 고대 이전부터 중세까지 건축물의 표면에 새긴 부조나 벽면에 그려진 이미지는 그 앞을 서성이는 사람에게 특수하지 못한 하나의 환경으로만 파악되었다. 고대인은 부조와 벽화를 경외하거나 두려워할 뿐 그것들과 자신과의 연관을 찾지 못한다. 르네상스 이래로 조각이 벽에서 독립되고 좌대 위에 당당히 서면서 그리고 이미지가 벽에서 벗어나 액자에 담기면서 특수해졌고, 현실의 삶과 구별되어왔다. 좌대와 액자는 그 위나 그 속의 내용물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디뎌 선 땅의 현실로부터 그 속의 것을 구별 짓는 틀이다.

이 지점에서 관람자가 탄생한다. 관람자는 생소한 대상 앞에서 진지하게 그것을 목격하고 자신의 경험과 인식에 그 생소함을 끊임없이 충돌시키는 사람이다. 그는 방관자와 구별되고 몰입자와도 구별된다. 방관자는 대상을 특수하게 인지하지 못한다. 자고 일어나 습관적으로 욕실에 했던 일을 지금 특수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그대는 욕실에서 방관자였다. 몰입자는 자신을 전적으로 대상에 내맡기고 자신의 중요한 과거를 의식하지 못한다. 음란 사이트 앞의 청소년이나 경마장에서 열광하는 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르네상스 이래 현대미술사는 바로 새로운 관람자를 생산하기 위한 분투의 사례들로 구성된다. 관람자는 각성하는 인격인 셈이다.


 

테드에 의해 테러 현장에서 탈출한 겔러는 엑시스텐즈가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 테드와 함께 접속할 것을 부탁하지만 테드는 게임기와 자신의 몸를 연결할 바이오 포트가 없다. 둘은 게임기 엔지니어를 찾아가 망가진 엑시스텐즈를 수리하고 게임에 접속한다. 이후 이 둘은 게임 판매소, 공장, 중국식당, 산장 등을 가상과 현실의 혼란 속에 오가면서 이상한 나라 엘리스의 여정처럼 반복, 반전, 진퇴양난의 연속 속에서 이야기의 대부분을 매꾸어 간다. 이들의 여정과 이야기를 지속시키는 결정적 매개물들은 게임을 가능케 하는 도구들이다.


  엑시스텐즈는 유기체적인 게임 시스템으로서 사람의 몸에 연결되어 게임의 환경과 내용이 직접 중추신경에 접속하여 다운로드 되게 고안돼 있다. 이는 양서류의 난자를 배양한 신체구조를 지닌 메타 플레쉬 게임포드(Meta Flesh Game-Pod)라는 본체, 게임 참여자의 척추에 삽입되는 구멍인 바이오포트(Bioport), 탯줄처럼 생긴 움비 코드(Umby Cord) 그리고 그 끝에 성기모양의 움비 잭(Umby Jack)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입출력 장치 없이 게임 사용자의 몸에 직접 꽂아서 접속하는 플러그 인(plug in)만으로 기능하는 점에서 전통적 소통 장치와 차이를 갖는다. 입출력 장치 없이 정보를 전달하는 이러한 직설의 습관은 미술가의 제작실에서 발견할 수 있다. 과거의 미술가는 매체를 통해 내용을 표현한다. 과거의 화가는 물감으로 사과라는 내용을 환각으로 재현한다. 현대로 올수록 미술가는 내용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으로 점차 재료 혹은 매체 그 자체를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전개를 보인다. 순수한 추상회화가 여기에 해당된다. 매체의 직설은 미술사적 전개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에 걸쳐 미술가들이 작품의 제작에 적용해온 직관적이고 기본적인 방식이다.

    Pablo icasso, Portrait of Kahnweiler,
     1919, Oil on canvas,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Marcel Duchamp,
     Bicycle heel/Roue  de
     bycy sle
tte, 1913, 
     Readymade: biclycle
     wheel, diameter 64.8 
     cm, mounted on
     a stool, 60.2 cm high;
     Original lost, Replica, 
     Private collection

 

이 영화에 등장하는 중요한 도구들은 거의 인체의 부분이나 장기에서 유래하는 형태를 하고 있다. 눌러서 게임을 시작하게 하는 게임 포드의 돌기는 유두의 형태이고 움비 코드는 정맥과 동맥이 드러나는 탯줄의 형태이다. 심지어 테러를 자행한 청년의 권총은 연골로 만들어졌고 그 실탄은 이빨로 되어 있다. 인체에서 유래하는 형태는 미술에서 비유적 서술의 원형으로 취급한다. 가령 내용에서 상당히 자유롭고 거의 매체의 본질에 도달해 보이는 브랑크시(Constantin Brancusi)의 조각에서 목격되는 유기적 형태는 그의 조각이 끝내 순수한 추상을 획득하지 못한 것으로 오늘날 판독된다.


피카소(Pablo Picasso)의 극단적으로 난해한 회화가 추상이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분석적 큐비즘 시기(1909~11) 피카소의 회화는 거의 모든 형태가 해체되어 연상이 사라진 것처럼 얼핏 보이지만 끝내 인간적 암시를 지우지 못하는 외관이다. 이 둘 다의 작품들은 일말의 비유와 연상을 허용하는 방법으로 인체의 부분을 암시하기 때문에 추상미술이라고 하지 않는다. 사람은 생소한 경험 앞에서 그것을 자신의 인식으로 받아드리는 과정에 그 경험을 자신의 과거 더 나아가 인간적 생태에 비교해 거기서 생겨하는 유사성에 안도한다.

   연골로 만들어진 총을 겨누는 테드
   이 총은 영화가 시작될 때 테러범이 사용한 것과 동일하다
.

이것이 바로 비유이고 연상이다. 이 영화에서 이러한 생태적 형태는 바로 영화가 미니멀 미술이나 순수한 추상회화와 구별되는 서술로서의 매체적 특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이게 한다.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게임을 마친 중국인이 말한다. “우리는 아직도 게임을 하고 있는 중인가요?” 이 말에 놀라는 테드와 엘레그라를 보는 영화관의 관람자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게임의 과정을 목격했음을 깨닫는다. 여기서 그 관람자는 곧 이 영화가 시작될 때 스크린 너머의 가상 세계로 뛰어든 테러범이 혹여 바로 자신이지 않을까라는 왜곡된 착각마저 확인하려 할 것이다. “엑시스텐즈”는 플러그 인의 직설 대 생태적 형태의 유사성, 매체적 속성의 순수성 대 서술적 비유의 안도, 이들 상반된 특성이 영화 전체에 충돌하면서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 관람자로서의 동질성과 몰입자로서의 동질성을 한꺼번에 제공한다. 이 충돌 앞에서 관람자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으로 통합한다. 현대미술이 새로운 시각적 개념을 생산해 온 방식이 이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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